수양록 두 번째 이야기

뜨거운 영천의 여름 날의 꽃 : 유격

by 행복한일상사령관

3월에 입교하여 4개월간의 교육(훈련)기간동안

우리는 더위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덥다고 나무그늘에서 쉴수가 있나..

세월아~네월아~하며 터벅터벅 걸을수가 있나..


우린 늘 생활관 입구에서 훈련장까지

1~3km떨어진 교정을

단독군장차림으로 뛰어다녔다.

군가와 함께....


나는 푸른 소나무 군가를 좋아한다.


이 강산은 내가 지키노라 당신의 그 충정

하늘 보며 힘껏 흔들었던 평화의 깃발

아아 다시 선 이 땅엔 당신 닮은 푸른 소나무

이 목숨 바쳐 큰 나라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이 강산은 내가 지키노라 당신의 그 맹세

만주 향해 힘껏 포효하던 백두산 호랑이

아아 다시 선 이 땅엔 당신 닮은 푸른 소나무

이 목숨 바쳐 큰 나라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정말..힘이들어서 목에서 핏향이 올라와도..

이 노래만큼은 늘 있는 힘껏..

목청껏..불렀다.


그렇게 모든 군가도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나오고..아침 저녁 뜀걸음 3km쯤은

우습게 느껴질 때즘..

우리는 2주간의 유격훈련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화산 유격장"


우리나라 3대 유격장 중에 하나인 곳으로

3사관학교 생도들 뿐만 아니라

학교에 입교하여 단기 교육을 받는

전.후반기 학사장교, 간호사관생도..

인근 부대의 장병들까지..

이곳을 이용한다.


유격훈련은 2주과정으로

1주차는 일반유격훈련으로

기초와 산악장애물 극복과정..

2주차에는 종합유격 과정으로

생존기술이라고 해서

밤새 걸었던 기억 뿐이다..


무수면 행군?!?!이라고나 할까..


처음 유격훈련에 임하는 우리들은

(6중대 4소대원 : 여후보생 동기들)


대학교 M.T가는 것 마냥 저마다

신이 나 있었다.

각자 나름의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것은 대부분..각종 음료와 간식류..

당시 교내에 있던 P.X이용은 가입교 및

군인화단계 훈련 시에는 이용이 불가 했었으나,

입교 후 2개월 지나고는

주말에 사용시간이 주어졌다.


나도 당시에 같은생활관 동기들과 P.X에 들러

음식류 뿐만 아니라 행군을 위한 반창고..

바세린..운동화깔창 등..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핫템들을 모조리 챙겼다.


그렇게 시작된 2주간의 유격훈련의 시작~!!

유격훈련의 시작은 늘..입소행군부터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유격훈련을 위해 만들어진 몸과 맘으로

무장되어 있던 상태였기에

전인원 낙오없이 잘 훈련입소과정을 마쳤다.


당시 2006년 월드컵이 시작되어

2002년의 한일월드컵의 그 열기와 환희가

다시 샘솟았을 때라..

학교내에서도 3사관 생도들은

월드컵 축제에 동참,교내 열기가 뜨거웠다.


우린 그러한 분위기를

주말 종교활동을 통해서만 조금 맛볼수 있었다.


나란 아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군인아빠 옆에서

늘 응원했었기에..


유격 훈련 1주차 때 대한민국과 토고전의

경기관람을 그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렸다.



24인용 막사에 설치된 조그마한 TV통해

우리 모두는 한마음 한뜻으로


벌써 목이 다 쉬어 목소리가 안나와도

쇳소리 내어가며

대한민국 축구팀을 응원했다.


결과는 2:1 승리..

우리 축구팀 월드컵 역사상

첫 원정경기 첫승으로 기억한다~!


서로 땀과 흙으로 범벅이었던 CS복도

아량곳하지않고 얼싸안고 좋아했던 우리들..


태어나서 한번도 축구를 본적없는

2002년 월드컵때도 축구는 안보고

치맥만 먹었다는 나의 어느 여군동기는

내가 직접 경기를 보는 내내

축구룰을 1:1개인 과외해주며

주입식교육을 시켜줬다.


'에라이! 노란옷 입은 아저씨는 누구편이냐니?'

이건 아니잖아..ㅎㅎ

후반전 루즈타임즈음에는 이사람..

옵사이드룰까지 마스터할 정도로

스파르타식으로 90분내내 내 입은 쉬지 않았다.



그렇게 1주차 교육에 몸과 맘이 적응해 갈 즈음..

우리는 죽음의 2주차 교육이 시작되었다.

2주차 교육은 그야말로 생존술 훈련으로

모든 훈련이 야간훈련으로 이루어 지고,

주간에는 계속 걷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2주차 훈련 당시 에피소드는

당시 칫솔을 잃어버린

동기언니에게 내내 나의 칫솔을 빌려준 일이다.


*동기끼리는 나이차를 막론하고 지내지만

같은병과로 후에.후반기교육(통신학교)가서

편하게 언니라 호칭했다.

(나에게 동기는 79~83년 생까지 동기다!)


요즈음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전우애로 쿨하게 빌려줬다.


하지만 매번 동기(언니)가 자기가 먼저 쓰고

나중에 나를 주더라. 어차피 별차이 없는데

꼭 그렇게 하길래..

좀 얄미웠다고 할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가 누적된 2주차 훈련 끄트머리즈음에는

나도 센치해져서 먼저 후딱쓰고 빌려주는

소심한 복수를 했다.



중간중간 나에게도 고비가 있었던

화산유격장에서의 2주..

내가 살면서 '고소공포증이 있었구나!'하고

처음 깨달았다. 헬기레펠을 하는데..

실제 헬기레펠 아닌 모형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동작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혼자 10분이상을 망설였다.


심지어 그곳은 실제 모형 전 동작을 배우는

소형 모형인데도 도저히 의지로 할수가 없었다.

군에서는 의지로만 되지는 않는다.

생각이 나기전에 먼저 몸을 움직여준다.

그렇다.

조교가 그냥 하강낙하를 시켜준다.


악~! 소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내 다리는 땅에 닿았다.

조금 전 10분이라는 시간이


무색해질 만큼 짧은 거리. 낮은 높이였다.



울고 웃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유격훈련장..

아직 현역으로 군생활중인 남편에게 물어보면

본인은 죽어도 그시절로 안돌아간다고 하는데..

캠핑족도 이해못하고 왜 군에서 훈련으로

실컷했던걸 집에서도 해야하냐는데..


나는 그때 그시절의 나.

24살에..

군에서 지휘관이 되기위해 좀더 힘든 훈련을

받고 견뎠던 내가 너무나도 그리워서


이번주말 남편 졸라 캠핑이라도 다녀와야겠다..


그때의 유격은 동기들과 함께 울고 웃었지만...

지금의 유격은 사랑하는 가족들..

남편과 세아이들과 함께..



이것으로 나의 후보생시절..

뜨거운 영천의 여름!!

유격훈련 이야기를 마칩니다.


다음편은 오만촉광의 소위 계급장.


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유격훈련 복귀후 달콤했던 첫외박 사진

첫외박때 대전역에서 상봉한 우리가족



첫 외박때..해맑은 나의 모습








#화산유격장 #2주간의훈련 #2006년월드컵 #첫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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