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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준 Jul 07. 2023

은따의 기억과 그 영향

은수는 기형만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은수는 자신이 사람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게 아닌가 싶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불편한 행동을 해서 그 사람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그냥 불편한 것도 같다. 나 아닌 모두가 낯설고 불편하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낯섬과 불편함을 어떻게 이겨내고 사는 걸까? 시끌벅적 하게 모여 떠들고 술먹고 노는 행위가 은수에게는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즐겁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단지 그 시간을 견딘다. 그래서 동아리나 친구모임 후에는 1분이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사람에 대한 불편함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오은영 박사가 늘 분석하는 방식대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봐야 하나.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부터 은수는 아빠의 직장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 말은 전학도 자주 다녔다는 말이다. 국민학교는 3군데, 중학교는 2군데를 다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업을 이유로 더이상의 이사와 전학없이 정착할 수 있었다. 

전학을 자주 다닌다는 말은, 몇년에 한번씩은 새로운 학교, 새로운 담임, 새로운 친구와 마주해야한다는 것.

은수는 이것이 천벌이라 여겼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에게만 이런 고통이 반복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은 어린 은수의 마음이 이렇게 타들어가는 걸 알 리가 없다. 그저 별 말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은수가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수의 낯섬에 대한 불안과 사람에 대한 불편함은 언젠가 전학가게 된 시골 학교에서 은따를 당하고 나서 결정적으로 촉발되었다. 그게 은따가 맞았을까? 대놓고 괴롭힌건 아니니까 은따 정도로 정의하자.

경기도권 도시에서 살다가 경북 산골로 전학을 가보니, 그저 학교는 작고 학급인원은 적고 마을은 단조로웠다. 마을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국민학교는 1개, 중학교도 1개 뿐이었고, 고등학교는 인근에 큰 도시로 가야하는 그런 곳이었다. 이 말은 국민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계속 같은 애들끼리 보고 9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은수가 4학년때 전학을 갔으니 은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이미 지난 4년간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어 놓았다. 그 4년동안 은수처럼 이방인이 전학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단다. 은수는 관심최고조의 뉴페이스.


전학 첫 날, 죽기보다 싫은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강은수 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첫 수업시간, 담임은 이방인이 들어온 교실의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본답시고,

"은수는 도시에서 살아서 쌀나무가 뭔지 모르지? 한번도 못봤을텐데 이제 여기서 찾아보면 되겠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심지어 은수는 무슨 농담인지 이해도 안됐다. 

담임이 말한 '쌀나무'는 '벼'였다. 이게 웃긴건가?

담임의 그 말같지 않은 농담으로, 은수는 도시아이, 은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시골아이들로 이분법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나를 제외한 여자 아이들은 지은이라는 아이를 중심으로 하나처럼 움직였다. 여자 엄석대다. 은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점심시간에 은수만 제외하고 지은이 책상에 모여서 같이 밥먹기, 지은이가 하자는 놀이만 하기, 지은이의 말에 토달지 않고 지은이의 행동에 반대하지 않기, 지은이가 별로라고 하는 애한테는 말걸지 않기. 은수는 지은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이유는 모르지만 모든 여자아이들이 은수를 힐끗거리기만 할 뿐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도 같이 점심을 먹어주지 않고, 누구도 같이 하교하자고 제안하지 않는걸 보면 은수는 은따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은수는 여러번 전학을 다녀봤지만, 은따 경험은 색달랐다. 오히려 누구도 자신에게 무차별적으로 질문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관심이 귀찮기도 하니까. 은수는 따시키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일부러 귀담아 듣지 않았더니 정말 들리지 않았다.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이어폰이 있었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보낼 수 있었을텐데 그땐 그 자유의 시간을 즐길 방법이 많지 않았다. 귀는 자유를 얻었으나 손과 눈이 심심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이제 은수의 손과 눈은 정당하게 할 일이 생겼다.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난 관심없을 이유가 있다. 그러니 괜찮아.'

어린 은수는 외롭게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을 보호복으로 덧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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