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할 수 있는 복수.
복수.
연진아, 넌 살면서 누군가에게 복수라는 걸 해본 적이 있니?
너도 알겠지만 복수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를 돌려주는 걸 말해.
정신과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어.
네 남편한테 문자가 온 건.
네 남편은 자상하게도 나의 안부를 묻더구나.
그 따스함은 피해자의 연대감 같은 걸까?
아니면 나의 가정이 파괴되길 바라고 접근하는 호랑이가 숨긴 날카로운 발톱이었을까?
네 남편은 너와 내 남편이 있었던 일을 문서로 정리해 놨다고 했지.
그리고 가정을 유지하지 않길 원한다면 그 파일을 보내준다고 했어.
참 치밀한 성격이구나 싶었어.
그랬기 때문에 너와 내 남편이 그렇게 혼신의 힘으로 숨겨왔던걸
네 남편은 알아챘겠지.
난 네 남편과는 달리 한 번도 몰래 남편의 휴대전화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
10년을 넘게 살면서 말이야.
그건 믿음이었을까, 자만이었을까,
그저 습관이었을까?
그게 뭐였든 말이야 결과적으로 난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남편의 카톡을, 이메일을, 인스타 디엠을
몰래 확인했어야 했어.
그랬다면 난 지금 이런 후회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유치하기 찬란한 복수 따위를 너에게 얘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의심이 나쁜 것이 아니었는데 난 왜 나쁘다고만 생각했을까?
연진아. 의심하고 의심받는 세상이 맘에 드니?
이것도 너의 작품인데 말이야.
내가 추구하던 가치의 기준이 희미해져 가.
도대체 뭐가 옳은 거니, 연진아.
네 남편은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지.
그 복수가 뭘까 정말 궁금했어.
어떻게 하면 받은 걸 되갚아 줄 수 있을까 그 공평함을 난 도저히 모르겠거든.
도대체 네 남편은 네게 어떤 복수를 했니?
그래서 넌 아팠니?
네 남편만큼? 나만큼?
난 네 남편이 제안한 그 유혹적인 파일을 받지 않았어.
정말 궁금했는데 말이야.
'가정을 유지하지 않길 원한다면'이란 단서가 없었다면 난 그 파일을 받았을지도 몰라.
그때 난 어떤 결정도 유보해 둔 채
내 상처를 우선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난 내 거센 호기심과 싸워야 했어.
빌어먹을. 뭐 이렇게 싸워야 할 게 많은지.
미친 듯이 운동에 매진했던 내가 조금은 이해가 가니?
너에게 선물 받은 부조리하고 추잡한 이 세상에서
여전사가 되어 모조리 싸워 이겨야만 했거든.
연진아 내게 복수는 꿈만 같이 아득하고 멀다.
당장에 살아가야 한다는 과제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힘이 들거든.
난 과연 너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내가 받은 고통을 너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연진아, 넌 신을 믿니?
난 신을 믿지 않지만 사건에 휩쓸려버리는 인간의 무기력함은 믿어.
네가 저지른 짓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그 무서운 결말을 믿어.
그렇다면 복수는 결국 나의 몫일까,
가만히 있어도 언젠가 네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일까?
넌 무엇일 거라고 생각하니. 연진아?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한 죄책감이 아니야.
살면서 겪는 너의 모든 고통이,
네가 저지른 짓 때문이라는 걸
하나씩, 하나씩
마른 잎이 땅에 떨어지듯 서서히 너에게 닿기를 바라.
운이 없어서도 아니야.
신의 장난도 아니야.
절대 네가 해서는 안 됐던 너의 선택이 결국 너의 모든 불행을 가져왔다는 걸
눈물 속에서 깨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