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1_운동
연진아,
넌 어떤 운동을 하니?
내 남편과 공원의 트랙을 돌고는 했다니까
걷는 거나 러닝을 좋아하니?
아니면 운동이란 네 남편을 속이기 위한 위장일 뿐이었니?
난 말이야, 널 알고 지나치게 열심히 운동을 했어.
의사도 운동이 우울증에 좋다고 권했지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할 수 있느냐고 내게 물을 정도였지.
너를 알기 전부터 댄스 수업을 들었는데, 새롭게 헬스를 추가했어.
아주 오래전 헬스장을 등록한 적은 있지만
겨우 몇 번 나가 러닝머신을 뛸 뿐이었지.
장기간 등록해 놓고 몇 번 나간 기억도 없어.
헬스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 신기하게 느껴졌었지.
이번엔 달랐어.
PT를 등록해 기구 사용법을 배우고 근력운동을 했단다.
스쿼트가 뭔지, 런지가 뭔지 하나씩 동작을 배웠어.
기존에 체력이 좋지 못해 처음엔 열개도 겨우 하고 다음 날이면 근육통에 시달렸지.
그래도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헬스장에 갔어.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너를 생각했단다.
특히나 운동을 하다가 마지막 힘들 때 말이야.
이를 악 물고 너한테 지지 말자고 생각하며 버텼지.
헬스가 끝나면 여전히 댄스 수업에 맞춰 춤을 췄어.
당연히 처음엔 집중을 못했지.
잘 아는 동작도 기억이 나지 않았거든.
때론 노래 가사가 내 발목을 잡았어.
남자친구의 바람난 이야기 같은 유치하고 처절한 가사 말이야.
맨 뒤에 서서 앞에 춤을 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세상에 나만 빼고 다들 즐거워 보인다는 생각에 질투심으로 수업 시간 내내 괴로워했던 적도 있어.
연진이, 너와 같은 존재를 나만 안고 살아가는 거 같아서 억울했지.
그러면서도 난 매일 춤을 췄어. 연진아.
너를 생각하면서 말이야.
헉헉거리며 수업을 끝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아주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거든.
너와 내 남편과의 일들이 원치 않게 머릿속에서 재생될 때도
오전이고 밤이고 미친 듯이 운동을 했어.
헬스를 가지 못할 때는 동네 공원을 걷기도 했고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홈트를 하기도 했지.
정신보다 몸을 더 괴롭혀야 할 거 같았어.
몸이 더 아프고 고달파야 그 고통 속에서 내가 살 수 있을 거 같았어.
연진아, 결국엔 너를 생각하기 위해 혹은
너를 생각하지 않기 난 그렇게 강박처럼 운동을 했어.
덕분에 평생 해보지 않은 다이어트가 저절로 됐지.
잘 먹지 못하는 상태에서 운동을 하니 생각보다 살이 잘 빠졌어.
둘째를 낳고 살을 빼는 게 조금 힘들었는데 말이야.
그러고 보면 연진아, 이렇게 네게 고마운 일이 많구나.
너한테 몸은 어떤 의미니?
난 몸과 정신을 분리하면서 남의 눈에 보이는 몸 따위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
더 중요한 건 정신이라고 말이야.
몸보다 정신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적당히 내가 불편하지 않을 시선의 건강한 몸이면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임신과 출산이 내 몸을 조금 보기 흉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게 자랑스럽기도 했어.
그런데 아니더라.
내가 싫어지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게 보기 싫은 내 얼굴,
볼품없어진 내 몸이더라.
그래서 처음엔 거울을 보는 게 참 힘들었어.
눈에 보이니 탓하기가 쉬웠지.
표준에서 마름까지 왔는대도 아직 내 몸이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 건
내 상상 속에서의 너의 몸 때문일까?
아직 건강하지 못한 나의 정신 때문일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난 매일 강박처럼 운동을 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사실 운동이 아주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까 봐 불안해서가 더 클 거야.
왜냐면 내 삶은 너를 알기 전과는 많이 달라야 하거든.
이유는 조금 서글프더라도, 난 운동과 운동으로 달라지는 몸의 힘을 믿어.
연진아, 결국 난 정신이 먼저가 아니라 몸이 먼저더라.
정신이 몸을,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자만이었지.
내 정신만으로는 극단적 고통 앞에서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었으니까.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겠지?
사랑이라 착각한 네 미친 정신을
너의 더럽고 추한 몸은 통제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난 몸부터 달라지려고 해.
더 아끼고 가꿔줄 거야.
정신보다는 그쪽이 더 쉽다는 걸 알았거든.
그럼 연진아, 내 정신도 너를 알기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연진아.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쌍년 연진이가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동은이가 숨죽여 울고 있을까?
오늘 너에게 쓰고 있는 이 편지는,
사실 너보다는 피해자 동은이들에게 쓰고 있는 건지도 몰라.
너의 탓이 아니니 숨지 말고 행복해지자고.
당장 웅크리고 있는 이불속에서 나와
몸의 감각, 세포 하나하나 느끼고 통제하면서 스스로를 더 아껴주자고 말이야.
그래서 다시 소중해지자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