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정신과
연진아,
나는 처음으로 정신과라는 곳을 가 봤어.
너를 알고 나는 음식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거든.
내 슬픔은 눈물로 치환되어 멈추지 못하고 흐르고 흘렀지.
그러다 간간히 비명처럼 웃음이 터져 나왔어.
미쳐버린다는 건. 그런 걸까?
절망의 주머니가 팽팽하게 부풀어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린 순간.
바람이 빠지듯 터져 나오는 그 허망한 웃음을 너는 알까?
내게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어서라면 비겁하니?
그냥 살고 싶어서 아니었냐고 너는 나를 비난할까?
맞아. 아마도 살고 싶었나 봐.
그래서 남편 손에 못 이긴 척 이끌려 정신과라는 곳을 처음으로 가봤어.
병원은 하얗고 깨끗했어.
대기실은 지나치게 조용했지.
행여나 아는 얼굴은 만날 까봐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눈알을 굴렸지.
내 우울을 진단하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문제들을 풀었어.
이유는 너무 간단했는데 말이야.
연진이 바로 너 말이야.
사건은 명확했고 증상은 오래되지 않았지.
불안을 낮춰주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았어.
약을 받아오고도 약을 먹는 게 겁이 났어.
아니, 사실은 억울했어.
피해자인 내가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
미친 건 내가 아니라 연진이. 바로 너인데 말이야.
우울증이 무서운 건 밤이 아니라 아침이더라.
눈을 뜨면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이 나를 덮쳤지.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생한 감각이 나를 깨우면
정말이지 죽고 싶었어.
너는 왜 내 영혼만 죽였을까, 원망스러웠어.
남편에게 제발 나를 좀 죽여달라고 애원했지.
내가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삶이 깨지고 조각 나 나를 찔렀지.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잘못됐는지 후회하느라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를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했어.
연진아. 네가 선물한 나의 지옥은 정말 완벽했단다.
수면제를 삼켜야 겨우 잠이 들었어.
약 효과가 사라지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여름이 다가오는 날씨에도 터질듯한 불안감에 온몸이 떨렸지.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도 없으면서
수면제 없이 영영 잠들지 못할까 봐 걱정했지.
정신과 대기실에서 꼿꼿이 버티다가도
의사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져서 울곤 했어.
난 그게 참 자존심이 상하더라.
그래도 우울증 약만큼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았어.
웬만한 감기도 약 없이 버티고는 했던 나였거든.
의지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몇몇 종류의 약을 먹었어.
진짜 약 효과인지 플라시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
약 용량을 늘리고 그래도 화가 조금은 덜 났거든.
기쁨도 가라앉혀 감정에 무뎌지는 내가 낯설었지만 그 정도 손해는 감당할 수 있었어.
그렇게 감정에 동요되지 않을 때도 나는 문득 궁금해지고는 했어.
너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너는 지금 어떤 표정으로 웃고 있을까?
연진아. 나는 지금 우울증 약을 끊었어.
약 때문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몸에 이상이 생겼거든.
2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게 꽤나 번거로웠는데 잘 됐지?
너를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채 약을 끊은 게 잘한 일인지 아직 확신은 서지 않아.
그래도 이 정도면 난 제법 잘 지내고 있는 거 아닐까 싶어.
연진아,
외도 피해자는 어떻게 살고 있어야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그게 정말 궁금했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가.
너를 알고도 살아갈 내 모습이.
외도 사건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급 상처를 남긴다고 하더라.
일종의 트라우마지.
천재지변 같은 사고나 전쟁 등을 당할 때 겪는 충격이라나.
그래서 꼭 치료를 받아야 한대.
나는 정신과에서 우울증 약도 먹고
부부상담도 받았어.
6개월이란 시간도 흘렀고.
이젠 밥도 잘 먹고, 운동도 꼬박꼬박 해.
나의 상처를 한 번도 아이들에게 티 내지 않았어.
매일 웃기도 해.
그런데 연진아,
난 절대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해.
너에게로부터 장애를 입기 전의 모습으로 말이야.
그래도 독하게 잘 견디고 있는 내게
축하의 말 정도는 건네줄 수 있겠니?
물론 고맙다는 대답은 하지 않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