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3_부부상담 2
연진아,
외도를 겪은 피해자에게 어쨌든 상담은 정말 중요한 과정이야.
난 사실 힘들어하는 네 남편에게도 상담과 치료를 권했단다.
너는 알고도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으나,
외도 피해자에겐 정말 정말 괴로운 일이거든.
나처럼 네 남편도 많이 괴로웠을 거야.
부부 상담을 받고 남편과 난 매일 많은 대화를 했어.
상담사가 알려준 무드 미터 종이를 뽑아 들고
즐겁다, 슬프다, 화가 난다 정도의 단순한 감정체계만 가지고 있었던 남편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연습을 했지.
꺼내 보이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감정은 정작 꺼내 놓고 이리저리 건드려 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이렇게 감정을 공유해도 불편해지는 일은 없다는 걸 서로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감정을 더욱 다양하게 느끼고 표현하기 시작했지.
회피 성향의 내 남편에겐 정말 큰 변화였다는 걸 알기에
돌처럼 굳어진 내 마음도 조금은 열렸겠지만,
이러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대화를 그동안 해오지 못하고 살아온 내 세월이
불쌍하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어.
이럴 땐 내 인생이 마이너스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해.
굳이 고통을 겪어야만 겨우 한 단계 나아 가,
결국 제로로 시작할 수 있는 삶이구나 하고 말이야.
심연 속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 쳐야 난 겨우 지면으로 올라가 저 멀리 날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너처럼 욕망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이야.
이 억울함은 결국 내 선택의 대가겠지.
나와 내 선택을 분리하는 게 끔찍이도 힘들지만,
나는 더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기에
마이너스에서 시작하는 내 인생도 그냥 받아들여 보려고 해.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결국 난 제대로 날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물론 나라고 완벽한 사람은 아니야.
남편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억울한 마음에서였는지 급한 마음에서였는지
'아니, 그게 아니지'가 먼저 튀어나올 정도로 남편의 말을 쉽게 부정하고는 했었거든.
나한테 그런 습관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상담 시간에 의식을 하고 대화를 하다 보니 알게 되더라.
상담 시간에 배운 대로 상대방이 느낀 감정을 말로 곱씹어 보면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당신은 그런 감정이 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한 템포 늦어도 깨달음처럼 진짜 공감이 오고 가기도 했고.
연진아, 너는 얼마나 공감을 받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삶에서는 정말 낯선 경험이었어.
공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인지,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일인지.
연애와 결혼 생활을 통틀어 약 20년의 시간 동안 느끼지 못한 공감(그게 혹은 공감하는 척일지라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어.
상담사에게 배운 부부 대화법이 익숙하지 않아 다소 낯간지럽기도 했지만,
부부 상담을 받으며 배운 것 중 가장 효과를 많이 본 거 같아.
내가 너를 조금은 극복하는데 말이야.
오늘도 막막한 심정으로 눈을 뜬 동은이들한테 말하고 싶어.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자신을 위해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으라고.
그건 연진이 너도 마찬가지야.
타인을 쉽게 파괴하는 너도 참 아픈 인간일 테니깐.
연진이 너 나름대로의 상담과 치료가 필요할 테지.
그러면 너도 깨닫게 될까?
너는 진짜 하늘을 날고 있던 게 아니라는 걸.
남을 짓밟고 날아오른 건 언젠가 곤두박질쳐질 제자리 뛰기에 불가하니까.
지면에 꼬꾸라진 너는 나보다 더 많이 다쳤길.
그리고 꼭 너의 상처를 치료하길.
그래야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제자리 뛰기와 곤두박질과 치료가 반복되지 않겠니?
왜냐면 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나쁜 년이니깐.
평생 정답 그 언저리에서 머물다 고통스럽게 사라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