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4_나의 욕망
연진아, 안녕?
난 네가 전혀 안녕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어.
내 영혼을 죽인 네가 아무 탈 없이 편안함을 바라는 건 너무 큰 위선이지 않겠어?
뭐 난 사실 위선적인 편이야.
겉으로만 착한 체하면서 그게 나인 거라고 착각하며 살았었지.
그래서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먹고 싶은 거 내 욕구를 감추며 살아왔어.
내 욕구를 참아내고 희생하면 나는 착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거든.
너를 알고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그 지점이 참 한심하더라.
내가 희생하면 배려라고 알고 남편이 고마워할 거라고.
내가 참고 양보하면 사랑이라고 알아주겠지 하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거 말이야.
양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도움을 드려야 하는 우리의 결혼 생활은 조금 가난했지만,
내가 일하고 아끼는 모습이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 되길 바랐어.
그 과정이 궁상스럽거나 추잡 스러지 않게 나름 자동차, 여행 등에 적당한 소비는 했지만
나에게 쓰는 건 왜 그렇게 아깝던지.
몇 천 원짜리 화장품, 가판에 널려진 행사가격의 싼 옷으로도 난 만족했었어.
합리적 소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입덧을 하면서도 장거리의 회사에 가기 위해 바득바득 지하철에 올랐지.
그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그러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참 구질구질하지?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행복이란 게 얼마나 추상적인가, 하면서 평가절하했지.
감히 가 닿을 생각 없이 견디다 보면 언젠가 보상처럼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삶은 언제나 즐기기보다 견디는 쪽에 가까웠지.
너를 극복하려면 내 삶의 태도부터 바꿔야겠더라.
적극적으로 내 행복을 찾아야 했어.
다른 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게 뭔지
내 속을 두드리고 두르려 봤는데......
연진아, 사실 아무리 두들겨봐도 도통 모르겠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말이야.
울고 투정 부려서라도, 행여 남의 것이면 뺏어서라도 갖고 싶은 게 뭔지 말이야.
참는 게 습관이 된 걸까?
나를 위해 내지르는 게 아직 참 많이 불편하구나.
앞뒤 재지 않고 욕망에 움직이는 너의 이기심이 참 부럽다.
어린 시절 7, 8살 정도 됐을 때였을까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훔친 적이 있어.
어른들에게 걸리지 않았지만 그 최초의 도둑질은 내 양심에 상처를 남겼나 봐.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보다는 두렵고 불쾌한 기억만 가득해.
그 이후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어.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난 이렇게 불안했는데
가정이 있는 남자를 탐한 너의 대범함이,
욕구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너의 삶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아니 그렇게는 못 살 거야.
내 욕망으로 누군가가 다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선택을 거두어들이겠지.
연진아, 이건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야.
보통의 정신이 건강한 인간이라면 응당 그럴 거야.
이 세상에 너와 같은 인간이 더 많다면 그건 너무 비극이잖니.
결혼 후 몇몇 남자가 내게 관심을 보인적이 있어.
내가 결혼 한 걸 몰랐던 남자들에겐 정중한 거절을 하면서도
내겐 나쁘지 않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했어.
내가 결혼한 걸 알고도 접근하는 남자들은 정말 경멸했단다.
단 한 번도 그 마음이 진심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그 역겨움이 네겐 사랑이었다니,
넌 참 네 욕구에 충실하면서도 비위가 좋구나.
힘들어도 요즘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
내가 원하는 걸 그냥 하는 걸 말이야.
물론 아직 많이 미숙하단다.
내가 그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족 공동의 이익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져 나를 가로막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스스로를 검열해.
하지만 연진아, 나는 정말 더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걸 할 거야.
재미라는 거 나도 느끼고 살 거야.
마음껏 이기적으로 변할 거야.
배려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나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칭찬받을 걸 생각하고 한 행동에 비난보다도 더 큰 배신으로 돌아와서가 아니야.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