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내연녀, 연진이에게 10

세 아이의 엄마인 너에게, 모성을 묻다.

by 동은

연진아,

바쁜 나날들에 너를 묻어보려 해도 도저히 묻히지 않는, 여전히 아픈 이름 연진아.

너는 어떤 나날들을 보내고 있니?

너의 세 아이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니?


내 바쁨은 나보다는 아이들 때문이기도 해.

아직은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거든.

모성이라는 이름에 속지 않으려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려 하지만

가끔 그 작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보면

아이들과 나의 분리가 참 쉬운 일은 아니구나 싶어.


아이들 때문에 희생하면서, 포기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어.

그 억울함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할 거 같았거든.

나 자신의 삶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고 생각했는데

때론 일을 병행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게 구조적으로 나의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 빨리 크기를 바라고 바랐어.

특히 너와 내 남편이 만났던 그 시기에 말이야.

내가 육아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시기야.

난 그 힘듦의 이유를 제일 먼저 아이에게 찾아보려 했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아이를 데리고 상담센터를 찾았단다.

물론 나의 남편과 함께 말이야.

남편의 그 대수로워 보이지 않음이, 조금은 무책임해 보였던 모습이 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이의 문제를 바라보는 남편과 나의 시선이 달랐었기 때문일까?

이 힘듦을 남편에게 공감받지 못하고 혼자 너덜너덜해져 가는 내가 억울했었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아이의 상담은 허무하게 끝났고

나는 여전히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헤맸어.


그래도 아이를 이해하고 싶어서 힘들게 풀배터리 검사를 예약했어.

그 검사 전 날 너의 존재를 알아버렸지.

도저히 검사를 받으러 갈 자신이 없어서 한 주일 정도 검사를 미뤘어.

그 검사에는 부모의 심리평가도 포함되더라.

너를 알고 나의 심리가 어땠는지 알고 싶니?


<현재 상당한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시사되고, 자신을 비난하다가도 타인을 비난하는 등 내적으로 갈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여겨짐. 일련의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하면서 억울함과 분노, 우울, 소외감 및 고립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임. 스트레스 상황을 충분히 견디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겠으며, 때로는 분노를 표현한 뒤 자책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우울감이나 분노가 해결되지는 않는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양상 됨. 스트레스 상황에서 때로는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를 자책하면서 우울해지겠으며, 아동의 양육의 훈육 과정에서도 충분한 에너지를 투여하지 못하고 이에 다시금 자책을 하는 부정적인 양상이 나타날 수 있겠음.>


다행히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 아이를 길러내는 나는 어때 보이니?

내 삶에서 너무 크고 중요해서 두렵기까지 한 나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에.

내 목숨을 걸었던 내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에 급격히 브레이크가 걸렸어.

네 덕분에 말이야.

자신감을 잃었고 허무했지.

'나 따위가. 나 따위가.'라고 자책하면서.

아이들에게 해 왔던 그 모든 노력들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너는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들에게도 죄인이야.




너는 어떠니?

나의 아이들보다는 큰 아이들이지만

나보다 한 명 더 많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너의 모성은 어떠니?

둘을 키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셋을 키우고 일을 하면서도

다른 남자와 외도를 한 너의 부지런함과 에너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구나.

너는 너의 아이들에게 그 부지런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니?

너의 아이들이 겪을 상처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거니?

너는 도대체 어떤 엄마인 거니?


너의 부도덕함을 반성하라고 모성에 읍소하려는 건 아니야.

자식과 나의 삶을 구분해야 하는 데는 나도 동의하니까.

하지만 너는 정말 너의 선택과 행동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궁금해.

모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거니?

그게 너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너의 가치인 거니?


너는 말이야.

나와 너의 남편을 죽였고,

거기에 다섯 명의 아이를 죽인 거야.

네가 낳은 아이들.

또 나의 아이들.


그 죄를 네가 엄마라고 불리며 갚을 수 있을까?

이전 09화내 남편의 내연녀, 연진이에게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