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내연녀, 연진이에게 11

그 이후, 1년

by 동은

연진아, 안녕?

일 년이 지난 너는 평온하니?

가끔 너의 아이 셋을 데리고 제주도로 가서 말을 타거나,

집 테라스에서 저녁을 먹기도 하니?


나는 안타깝게도 평온하지 못해.

매일 머릿속에 너를 안고 가끔 통제할 수 없는 생각들에 무너져 울고는 하지.


우리는 보통 일 년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주고는 하잖아.

난 너를 잊을 수 있는 기간이기를 바랐어.

너로부터 멀어지려고 부단히도 발버둥 쳤지.

더 행복해져 보려고 안 하던 일들을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더 많이 웃어보려고 했어.

그래서 이 브런치의 기록도 '남편의 외도로부터 극복하는 방법' 따위가 될 줄 알았단다.


그런데 너는, 남편의 배신의 기억은 자꾸 나를 깊은 늪으로 끌어당겨.

그러면 나는 정말이지 살고 싶지가 않아.

아침에 눈을 뜨지 않기를 몇 번이나 바라고는 해.

차라리 큰 병에 걸리기를.

별로 창의롭지 못한 나는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이런 나를 너무 정신이 나약해서라고 비웃지 않기를 바라.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

내가 남편에게서 바란 유일한 것을 빼앗겨 버린 이 공허함은 너는 죽어도 모를 테니.


연진아.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웃긴 거 같다.

도덕도 법도 아무것도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지키려 애를 쓸까?

결국 고통은 지키려는 사람의 몫이라는 게 참 씁쓸해.

믿고 사랑하는 것의 결과가 이런 거라면

나는 도대체 세상의 어떤 면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거니?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끝이 나는 걸까?

용서도 극복도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일 년이 지났는데 말이야.

너는 '밀양'이라는 영화를 봤니?

나는 네가 그 영화의 '나쁜 놈'처럼 스스로 구원받고 용서했을까 봐 두렵다.

나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나를 가해한 아무도 그렇지 않은 거 같아 많이 두렵고 억울해.


안녕하지 않기를.

너와 너를 둘러싼 그 누구도 안녕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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