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시간
연진아,
너의 시간은 잘 흘러가고 있니?
난 두 가지 시간을 살아.
하나는 너처럼 흘러가는 시간.
하나는 너를 알고 멈춰버린 시간.
내 삶은 둘로 쪼개져.
40이 넘게 살아온 내 삶에 있어서
과거를 기억하려고 하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하루? 8시간? 5시간? 1시간?
내 삶에 있어서 최초의 기억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난 몇 가지의 기억을 가지고 얼마만의 시간만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인생이 한 줌의 재 같아 허무하기도 해.
내가 살아온 시간을 반이나,
아니 의식이라는 걸 갖고 나서부터 치면 반 이상 차지한 존재는 바로 내 남편이야.
그와의 기억은 뭘까?
남편의 거짓말은 그 모든 기억을 거짓으로 만들었어.
지나버린 것도 모든 의도를 의심하게 해.
진심이었을까? 다른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거짓말이지 않을까?
연진아.
괴로운 기억은 쉽게 지워버리는 나는
남편과의 추억이라는 것들을 지워버리면
이제 내 삶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외도의 배신이 무서운 건 말이야
이렇게 과거의 기억을 다 같이 거짓으로 만들어 버려서 인 거 같아.
물론 앞으로의 의심은 덤이지.
지금 이 순간 그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수많은 의심과 확인과 안도와 불안과
또 속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수레바퀴처럼 계속 머릿속을 반복해서 굴러.
연진아.
이렇게 살다 십 년 후, 나는 내 삶의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죽어 눈을 감는 순간
'아, 그래도 내 인생이 격하게 행복하지는 않았어도 나쁘지 않았구나.'
그 정도에도 미치지 못할까 봐.
눈을 감는 순간에도 '나한테 왜 그랬을까' 물을 나는
내 인생에서 뭘 기억할까.
널 기억하지 않으려면
나는 더 충실히 행복하게 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에너지가 쉽게 나지 않아 난 또 좌절해.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나의 의심과 괴로움을 덮을 충분한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