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습니다는 정답이 될 순 없어?
사람들은 질문을 할 때 물음표를 쓴다.
"이름이 뭐예요?"
"무슨 일 하세요?"
"좋아하세요?"
우리는 살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물음표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음표란 도대체 뭘까?'
???
???
???
미운 네 살이 왜 미운 나이일까?
그건 바로, 물음표의 폭격기가 되기 때문이다.
“왜 청소기는 청소기야?”
“왜 엄마는 엄마라고 불러?”
“아빠는 왜 엄마한테 혼나?”
아이의 작은 세상에서 수많은 물음표들이 날아다닌다.
어쩌면 이건 세상을 알아가는 당연하고도 순수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서른이 된 지금의 나도 여전히 물음표가 많다.
사람들이 말한다.
“혀늬님은 순수하시네요.”
“에너지가 넘치세요.”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궁금해서 질문한 것뿐인데?
나는 늘 ‘왜 그럴까’를 생각한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자, 관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다르게 해석한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나는 내 위치를 계속 찾아 헤맸다.
얼마 전, 오랜만에 소개팅을 했다
“혀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쉽게 말할 줄 알았던 입이 굳게 닫혀버렸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지?’
그제야 알았다.
나는 지금껏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물음표를 던졌던 미운 네 살의 아이는,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받지 못한 채 자라면
나처럼 된다.
“혀늬 씨는요?”
질문 하나에 대답하지 못해 버벅대고,
허둥지둥하며 타인의 생각을 가져다 붙이고,
그렇게라도 나라는 사람의 빈틈을 메꾸려 한다.
나는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많은 물음표를 던졌던 것 아닐까?
마치 신입생이 선배들 루트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것처럼.
교과서에 모든 문제에 ex, 예시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물음표에 느낌표가 던져질 것인지, 수많은 물음표가 계속 쓰일지에 대해서.
나처럼 질문이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해 방황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 모르겠는 그 상태 자체도 괜찮다고.
물음표로 시작된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그리고 나의 물음표 인생을 같이 공유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