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 꿈엔 박지성 선수가 자주 등장했다. 때로는 말처럼 뛰며 골 망을 흔들고, 때로는 상대 선수를 벽처럼 막아냈다. 그는 내 꿈에서도 나의 우상이었다.
다음 날이면 얼른 일어나 눈곱을 떼고 학교를 갔다. 박지성 선수가 꿈에 나와서 그런지 오늘은 더 멋진 골을 넣을 것만 같았다. 아침을 먹고 가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부리나케 달려가던 나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하도 구겨 신어 지저분해진 실내화를 신고 아침에 주어지는 우유 한 팩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을 차지해야 하니 밥을 어디로 먹는지도 모른 채 식판을 비워낸다. 너무 빨리 먹었나. 속이 더부룩하다고 느낄 때쯤 친구들이 하나둘씩 운동장에 모인다. 팀을 정하는 방법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엎어라 뒤집어라 데덴찌. 지역마다 구호가 다르다는 걸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팀을 다 짜면 이제 나는 박지성이 된다. 그토록 기다렸던 시간. 때로는 말처럼, 때로는 벽처럼 운동장을 누빈다. 좁디좁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말이다. 골을 넣고 제일 먼저 하는 건 역시나 박지성의 ‘풍차 세리머니’.
시간이 흘러 중학교에 입학해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사춘기가 왔을 때도 말이다. 언제나 점심을 가장 빨리 먹었고, 누구보다 빨리 운동장에 달려 나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유치한 데덴찌는 하지 않았다는 점. 그래도 아주 빠른 속도로 친구들과 팀을 정하고는 했다. 점심시간은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으니까. 이때도 골대의 그물을 흔들면 어김없이 박지성 선수의 ‘풍차 세리머니’와 함께 했다.
머리가 커진 탓일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 조금은 달라졌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예컨대 퇴근하고 온 엄마의 근심 가득한 표정 같은 것들과 집의 경제 상황들. 어느 누구도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집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열심히 하는 태도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만 모이는 면학실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등수가 많이 올랐다. 등수가 나올 때 뒤에서 시작했던 나는 어느새 앞에서 시작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등수는 많이 올랐지만 또래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탓일까, 혹은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문제였을까,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예민해졌다. 어떤 날은 아침을 먹고 토를 하기도 했고, 머리가 아파 잠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처방은 어김없이 축구였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 학업에 지친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었기에, 가끔씩 친구들과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때마다 교실은 땀 냄새로 가득했지만, 내 머릿속 가득했던 스트레스는 모두 비워지곤 했다.
재수생활을 거치고 대학에 입학을 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걱정은 수도 없이 많아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 어느덧 나도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고, 여러 가지 의문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이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런 고민이 커져도 나에겐 명확한 해법이 있다. 어린 시절처럼 박지성이 되는 것. '풍차 세리머니'와 함께!
나는 공 하나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