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접하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고등학교 때 학교가 끝나고 나면 소주 한 병에 담배 한 갑을 안주삼아 다 피우곤 했다.
그뿐인가, 술에 취하면 이유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을 일으켜 징계를 받기도 했다.
나의 말은 거칠었고 표정은 날카로웠다.
"왜 그랬을까?"
돌아보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불화와 엄마의 반복되는 가출, 이혼 그리고 새어머니들의 등장.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던 어린 나의 삶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무너진 가정에서 나를 지켜야만 했다.
누구 앞에서도 나약하고 슬픈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켜켜이 쌓인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야 했다.
무언가에 오래 눌려 있는 사람은
언젠가부터 말이 거칠어진다.
사람에 눌리고, 상황에 눌리고, 감정에 눌려 살다 보면
말투가 달라지고, 눈빛이 바뀐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던 말이
어느 순간 뾰족해지고, 날카로워진다.
그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숨이 막힌 채 오래 버티다 보면
숨구멍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그 몸부림이, 말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거칠게 내뱉는 말은 “좀 알아봐 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고 “나 너무 힘들다”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 말을 겉으로만 듣고,
그 사람을 냉정하게 평가해 버린다.
“왜 저렇게 말이 험하지?”
“성격이 왜 저래?”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가 무엇에 눌려 있었는지를.
말이 거칠어진다는 건, 마음이 곱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이미 너무 짓눌려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속은 이미 무너졌는데 겉이라도 세게 버텨야 하니,
말이 거칠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유난히 거칠게 들릴 때,
그 사람의 삶을 한 번쯤 상상해 보자.
그 말이 나오기까지 누르고 있던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부서지지 않으려고 입술 끝에 칼을 세우는 이들의 아픔을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청소년기의 방황은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고 품어준 몇몇 분들이 주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거나 조언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밥을 사주고 책을 사주고 조용히 그리고 너무나 따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아스팔트가 차가운 도시에서 그분들은 나에게 푸른 숲이 되어 주었고 내가 숨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만약 그때 내 삶에 그런 숲이 없었다면 나는 아스팔트 위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같이 되었을 것이다.
삶이 간절하고 무언가 급해질 때 어렵더라도 잠시 모든 것에서 떠나 자신을 봐야 한다.
말이 거칠지는 않은 지, 행동이 너무 앞서가지는 않는지.
세상 누구나 방황하고 실수하는 때가 있다.
자신을 너무 책망하지 마라.
당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지금 좀 아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