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쳤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웃는 표정을 짓는 것도,
사람들의 말속에 숨어 있는 뜻을 헤아리는 것도,
하루하루의 반복된 시간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버텨내고 있지만,
내 안의 벽돌들이 언제 건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깨어있는 동안에도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나는 무언가로부터의 충격을 강하게 버텨내고 있다.
출근길의 빗방울도,
사소한 메시지 하나도,
이제는 버겁게만 다가온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내야 하는지,
그 이유들은 많지만 어깨에 얹힌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진다.
돌아보면 나를 위해 산 날보다 남을 위해 산 날이 더 많지 않았나.
늘 남을 배려하며 살려했지 정작 나를 가엽게는 보지는 못했다.
나에게 고맙고 사과하고 싶다.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해.”
나는 떠나고 싶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나를 지치게 만든 온갖 것들로부터 떠나고 싶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
한없이 깊고 넓은데도 어쩐지 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람에 실려 오는 소금기 어린 향기.
수평선 저 너머로 이어진 끝없는 푸름은,
마치 나에게 말하는 듯하다.
“괜찮다. 괜찮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오래 앉아 있고 싶다.
아침이면 바닷속을 유영하고
오후에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리라.
커다란 밀짚모자에 목이 늘어진 티셔츠,
반바지에 슬리퍼.
누가 나를 알아보랴.
파도 소리에 맞춰 숨을 고르고,
해가 서서히 저물며 붉게 물들어 오면,
고깃 바구니를 들고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리라.
내일은 커피를 끓여서 절물로 산책을 가자는 이야기를 하며 창밖으로 밤바다를 내다보리라.
영겁의 시간이 바다 아래로 잠들면 나도 함께 천천히 가라앉고
그저 파도와 나, 바람과 나, 고요한 바다와 나만 있으리.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까?
다시 사람들 속으로,
다시 일상의 굴레 속으로.
떠남은 도피가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길.
남들이 정해준 내가 사라져야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는, 회복의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마음속에서 바다를 부르나니.
"하여, 제주 푸른 바다여, 나를 데려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