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야기 1편

by 박철

환경미화

1980년대 중반 내가 중학교 2학년 다닐 때의 일이다.


지금은 남녀공학이 되었지만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서울 불광동의 모 중학교는 남중이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늘 턱수염이 많아 턱이 거무스레한 총각 선생님이었다.

말 그대로 경상도 사나이인 선생님은 교편으로 항상 빨래 방망이를 들고 다니셨다.

말이 좋아 교편이지 몽둥이라는 편이 좋았다.

누가 봐도 한 대 맞으면 무척 아플 것 같은 몽둥이였다.


한 번은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 나눠주는 날이었다.

원래부터 말이 없고 무뚝뚝하지만 그날은 더욱 차가운 표정으로 교실로 들어오셨다.

성적표 뭉치를 교탁에 올려놓고는 이야기하셨다.

“우리 반 성적이 전체 학년에서 하위권이다. 반장과 부반장은 다섯 대, 나머지 학생은 세대씩 맞고 성적표를 받아간다.”

반장과 부반장을 필두로 차례로 한 명씩 엉덩이를 맞았다.

워낙 매가 아파서 한 대만 맞고도 대굴 대굴 구르는 통에 한 명이 맞는데 거의 몇 분씩이 걸렸다.

우리 반 학생 약 50여 명이 무려 두 시간 이상 걸렸다.

불이 다 꺼진 컴컴한 학교에 우리 반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밤 8시가 다 되어서야 학교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두 퉁퉁 부어 오른 엉덩이와 허벅지를 감싸 쥐고 절룩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서 바지를 벗어보니 엉덩이와 허벅지가 시퍼렇다 못해 검게 부풀어 있었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우리 반 어머니 중 학교육성회 임원으로 있는 분이 학교에 항의를 해서 담임선생님이 잘릴 거라는 둥 혹은 전근을 갈지도 모른다는 식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아침 조회 시간에 어두운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섰다.

우리를 한번 쓱~ 둘러보신 선생님은 담담하고 굵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부터 우리 반은 밤 8시까지 의무적으로 자율학습을 한다.”


모두 놀란 토끼 눈으로 서로 바라보았다.

불이 다 꺼져 캄캄한 학교에 유일하게 우리 반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다음 시험에서 우리 반이 1등을 못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라는 걸...


두 달 후 다음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은 우리 반이 1등이라는 소식을 전하시며 보기 드물게 씩~ 웃었다.

학교에서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는 반으로 정평이 나있던 우리 반은 단 2개월 만에 전교 1등 반이 되었다.

수업을 들어오시는 과목별 선생님마다 놀랍다며 칭찬을 하셨다.

2학기가 막 시작하는 때에 각 반별로 2학기 환경미화 시기가 되었다.

각 반별로 교실에 화분도 가져다 넣고 액자도 걸고 교실 뒤편 벽에 분단 표시나 동아리 조직표등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은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반이 환경미화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기 원하셨다.

학교 전체는 이미 불이 다 꺼졌지만 밤 9시가 다 되도록 우리 반은 환경미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얼마 후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와 쓱~ 둘러보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이만하면 됐다. 밥은?”

“...”

“나가자 밥 묵자.”


선생님은 환경미화 당번 십여 명을 이끌고 학교 앞 통닭집으로 갔다.

얼마 후 통닭이 나오자 우리는 모두 와~ 하며 달려들었다.

순간 선생님이 소리를 쳤다.


“잠깐 멈춰라”


우리는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봤다.


“아주머니 여기 맥주 좀 주이소”


아주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우리 앞에 맥주를 한잔씩 놓아주셨다.


“오늘 이거 다 못 마시는 놈은 집에 못 간다.”


통닭에 맥주 한잔...


다음날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선생이 학생, 그것도 중학생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는 소문이 학교에 파다했고 선생님이 큰 징계를 받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침조회 시간에 선생님은 굳은 표정으로 교실로 들어섰다.

우리를 한번 둘러보시더니 나가시려다 멈칫하고 우리를 돌아보며 한마디 하셨다.


“임마들아, 느그들은 쓸데없는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그라. 알긋나!!!”

“예~”


선생님이 나간 교실에서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말했다.


" 와~ 우리 담임 졸라 멋있어. 남자다~"

예나 지금이나 각 반마다 한두명 쯤은 선생님에게 반항적이고 껄렁대는 문제아 들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반에는 그런 문제아가 없었다.

이런 선생님 앞에서 무슨 반항과 거부가 있을까.

우리반 모든 학생은 담임 선생님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추종자가 되었다.

다른반 학생들은 모두 우리반을 부러워 했고 그때만큼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던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어려울 때가 있다.

때로는 힘이 들어 그만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선생님의 빨래방망이가 그립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정신 차리라고 엉덩이 한 대 때려줄 그런 선생님이 곁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은 지금 안녕하신지.

기회가 된다면 술 한 잔 꼭 올리고 싶다.


이 밤, 선생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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