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1990년 3월 나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했다.
강원도 양구.
서울이 고향인 나는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서 버스를 내렸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다.
개인 물품이 가득 든 긴 더블백과 M16 소총을 어깨에 메고 배정받은 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
내가 탄 군용 트럭이 비무장지대 최전방 부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민통선(민간인 통제선)을 한참 지나고서도 30여분을 더 달린 군용 트럭은 나와 동기 둘을 한 낯선 연병장 한가운데 남기고는 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연병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무슨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우리를 둘러싸고 히죽거렸다.
숨도 쉴 수 없는 긴장감과 중압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도망조차 갈 수 없는 휴전선 철책선 아래서 나의 군생활은 시작되었다.
"군기"
그 시절 전방부대의 군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고참에게 맞아서 이가 부러진다거나 의무대에 실려가는 일은 흔한 일상이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깊은 밤 고참과 산속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동안에 "조인트", 딱딱한 군화 모퉁이로 정강이를 까이는 고통은 정말이지 참기 어려웠다.
자면서 코를 곤다고 자는 나를 깨워서 몽둥이찜질을 하기 일쑤였다.
수백 번도 더 생각을 했다.
“고참이고 뭐고 이걸 확 죽일까...”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서도 몇몇 고참들은 개인적으로 참 잘 대해 주었다.
"강팔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바로 위 고참은 같은 서울 출신이었는데 고참한테 내가 맞으면 위로도 해주고 가끔 짱박아둔 건빵도 나눠주고 담배가 떨어지면 담배도 나눠주는 고참이었다.
다만 한 가지 너무 먹는 걸 좋아하는 게 탈이었다.
급식으로 사과가 한 개씩 나오면 사과 속까지 다 먹어버리고 찐계란이 나오면 껍질채 먹고 고등어조림이 나오면 가시까지 다 먹는 신기한 인간(?)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그런데 어느 날 부대 근처 산으로 작업을 하러 가서 커다란 구렁이를 잡았는데 강일병이 산채로 껍질을 벗기니 십여 개정도의 알이 내장과 함께 나왔다.
뱀은 모닥불에 굽고 뱀 알을 내게 자랑스럽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나 줄까?”
“음...”
차마 아니라고는 말을 못하고 놀란 눈으로 서 있었다.
“야 인마 얼마나 몸에 좋은 건데, 없어서 못 먹어.”
강일병은 입맛을 다시더니 뱀 알을 날것으로 꿀꺽 꿀꺽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런 미친 새끼...”
그래도 그 고참은 늘 내 편에서 고참들의 군기 잡기를 막아 주고 군생활의 이런저런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막내야, 계곡 가서 물 좀 떠 와라.”
한여름 작업으로 땀이 범벅인 고참들의 물통은 금방 동이 났다.
고참들의 물통 십여 개를 모아 산 아래 계곡으로 향했다.
혼자 20여분 산을 내려와 계곡에 앉아 오랜만에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잠시 한숨 돌리고 물통마다 시원한 계곡물을 가득 담았다.
그런데 물통 뚜껑이 하나 부족했다.
분명 처음에는 물통마다 뚜껑이 다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뚜껑하나가 부족했다.
물에 떠내려 갔는지 어딘가 나뒹구는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물속과 주변을 살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래 걸린다 싶었는지 산 정상에서 고참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물통을 하나씩 고참들에게 나누어 주고 뚜껑이 없는 빈 물통은 우선 내 배낭에 넣었다.
“강일병 님, 드릴 말씀이...”
“뭔데?”
“물통 뚜껑하나가 없어졌습니다.”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강일병은 내 입을 틀어막으며 나를 으슥한 곳으로 끌로 갔다.
“야이 미친 새끼야, 고참들이 알면 넌 이제 뒤졌어.”
한참 고민을 하던 강일병이 말했다.
“일단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내가 바로 윗 고참에게만 살짝 말해서 방법을 찾아볼게”
부대로 돌아온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보급품 검열이 수시로 있는데 걸리기라도 하면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왔다.
아침 세면을 하기 위해 개인 사물함을 열었다.
“우르르...”
사물함을 열자 검은색 물통 뚜껑 수십 개가 쏟아져 나왔다.
내무반 안에 나만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통 뚜껑이 내 사물함에 들어있지?”
그런데 그날 오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옆 소대가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어떤 새끼들이 우리 소대 물통 뚜껑을 다 훔쳐간 거야, 어떤 놈이야.”
나는 소대 내무반에 앉아서 옆 소대의 소란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랬다.
어젯밤, 내 바로 위 고참은 그 바로 위 고참에게 또 그 고참은 바로 위 고참에게 몰래 이야기를 하고 결국 소대원 전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고참들은 이 큰 사고로 막내가 맞아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두 잠든 깊은 밤 고참들은 저마다 몰래 옆 소대에 잠입(?)해서 물통 뚜껑을 하나씩 훔쳐 내 사물함에 던져 놓았던 것이다.
그날 밤, 강일병과 나는 삽을 들고 남은 뚜껑을 커다란 전나무 아래에 묻었다.
“인마, 이거 걸리면 너나 나나 영창이야.”
그날 이후 누구도 물통 뚜껑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나를 볼 때마다 “씩~”하고 웃으며 지나쳤다.
시간이 지나고 고참 들은 한 명 또 한명씩 전역을 하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전우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장에서는 아니었지만 고참들의 보이지 않고 티 내지 않는 배려와 사랑 안에 있었다.
나에게 전우애란 날마다 적과 마주한 차가운 휴전선에서 군 생활을 묵묵히 견디게 해 준 힘이 되었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강일병 님, 그리고 무섭기만 하던 고참님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때는 무서워서 차마 말을 못 했습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21사단, GOP 동부전선 가칠봉 피의 능선에는 아직도 노란 들국화가 피고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