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의 행방불명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야기 5편
이발의 행방불명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일요일의 일이다.
늘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발소를 같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부터는 엄마는 일부러 그러셨는지 내 손에 이발 요금을 쥐어주며 스스로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철아, 아침 먹고 이발하고 와~"
이발비를 받아 들고 집을 나서서 동네 어귀를 나와 큰길로 가는데 반 친구 세명과 마주쳤다.
"너희들 어디 가니?"
친구들은 좀 당황해하다가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놀이 공원"
"거기서 뭐 하는데?"
"구경도 하고 놀이기구도 타고..."
"나도 같이 가자."
"안돼."
"왜?"
"차비, 입장료, 점심 값, 이런 돈이 있어야 되거든."
나는 이발비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나 돈 있어"
그러자 친구들은 비쭉거리며 말했다.
"그걸로는 부족해."
"니들이 좀 꿔주라."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자기들끼리 한참을 의논한 끝에 부족한 돈을 겨우 만들어 내게 주었다.
부모님 없이 친구들만으로 버스를 타고 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버스비와 입장료만 겨우 만들었기에 점심도 거르고 놀이기구는 한 개도 타지 못했지만 놀이 공원은 나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고 하루라는 시간을 삭제하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해가 어스름한 동네어귀를 지나 집으로 들어서는데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너 이 새끼 어디 갔다 이제와!!!"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엄마 손에 있던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보통 때 같으면 한참을 맞아야 했지만 웬일인지 그날은 매는 단 한대로 끝났다.
엄마는 분명 폭발할 것 같이 화가 나있었지만 매는 그걸로 끝이었다.
다만 가족들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았지만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 벌을 서야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덜 혼난 거라고.
며칠을 가둬놓을 줄 알았는데 불과 10분쯤 지나자 엄마가 다락으로 올라오더니 양쪽 팔꿈치를 강하게 잡고서 내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이 개놈의 새끼 또 그럴 거야?"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의 이 말은 "난 너를 그만 용서할게."라는 뜻이라는 걸.
"아니."
"내려와서 밥 처먹어!"
나중에 알았다.
그날 나의 행방불명은 경찰서에 신고가 되었고 온 동네가 나를 찾아 난리가 났었다는 것을.
아마도 유괴사건쯤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밤이 되어서 멀쩡히 살아(?) 돌아온 나를 보며 화가 나기보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 어린이날,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다.
집안 형편상 누나와 어머니는 함께 가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방황을 하며 술이 만취해 집에 들어온 날이 있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을 먹었지만 최대한 술 먹은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다행히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을 속일 수 있었고 아무 야단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내 머리맡에 해장국을 끓여서 밥상을 들여주시고는 조용히 돌아 나가시며 이야기했다.
"속 버릴라 해장국 먹어라."
"..."
어느 날, 대학에 막 입학한 큰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과 선배들이 꼭 술집으로 가서 모임을 하자고 하네, 술을 먹어야 하나?"
지금은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순간 갈등을 했다.
"먹고 싶으면 먹어라, 못 먹는 것도 바보다."
아마도 우리 어머니였어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 가치관과 정의로움의 기준, 자식을 대하는 무한한 이해와 사랑의 마음은 모두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이 밤, 어머니 다리를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들고 싶다.
보고 싶다. 우리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