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와 계란프라이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야기 4편
경기도 양평, 농사꾼의 아들로 난 우리 아버지는 20대 젊은 나이에 16살 새색시와 결혼을 하고 작은 땅 판돈을 허리에 차고 상경을 했다.
산골에서 땅을 파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
한국전쟁 이후 어려운 집안 형편에 초등학교도 채 졸업 못한 아버지는 겨우 한글을 뗀 정도였다.
그마저도 시원찮았다.
그런 아버지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먹고 살기란 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노동일을 했고 결국 청소부로 평생을 사셨다.
어린 세 남매를 데리고 일 년을 멀다 하고 좀 더 월세가 싼 방을 찾아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내가 중학교 때 주민등록 등본을 뗀 일이 있었는데 얼마나 이사를 다녔는지 등본이 두 페이지가 넘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한 번은 옆 동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은 마당이 있는 고급 양옥 주택이었다.
어린 눈에 보기에도 “무척 부자구나” 싶었다.
친구와 놀다 보니 어느덧 어스름 해가 지는 시간.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친구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예야, 어디 가니?”
“집에 가려고요.”
“어머 저녁밥은 먹고 가야지.”
“아니에요, 집에 가서 먹을 께요.”
“어머, 손님을 굶겨서 보내는 건 아니지.”
친구 엄마의 강권을 도무지 뿌리치지 못했다.
너무 과분한 밥상이 친구 방으로 들어왔다.
노른자가 채 익지 않은 계란 프라이 반숙.
우리 집에서는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계란이었다.
그뿐인가.
우리 집에는 없는 텔레비전에서는 가장 인기가 많았던 마린보이 만화영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저녁을 먹고, 마린보이까지 다 보고 어두운 밤길을 30분쯤 걸어서 집으로 왔다.
어두운 밤 골목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전봇대의 불빛이 내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동네 개들이 “컹컹” 짖어 조금 무서웠지만 오늘 누린 호사에 비하면 참을 만했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놀나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누무 새끼 너 어디 갔다 이제 기어 들어와.”
“준하네.”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와.”
“난 빨리 오려고 했는데 준하네 엄마가 억지로 밥 먹고 가라고 그랬어.”
“네가 그지새끼야? 왜 밥을 얻어 처먹어. 또 한 번만 그러면 아주 죽을 줄 알아”
“... 알았어...”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는 마린보이와 계란 프라이를 물리치지 못했다.
“너 이 새끼 또 이럴 거야?”
“준하 엄마가...”
그리고 며칠 후 또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날 밤, 어머니에게 동네가 떠나가도록 마을 어귀에서 맞았다.
우리 엄마의 욕지걸이와 내가 우는 소리에 동네 개들이 짖었고 온 동네가 다 알았을 것이다.
"오늘 철이 날 잡았네..."
얼굴이며 팔다리 여기저기에 멍이 들도록 맞았다.
“띠리링, 띠리링”
눈물이 그렁 그렁한 채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의 자전거 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렸다.
“철이 얼굴이 왜 저래?”
“또 그러기에 뒤지게 팼어요. 요즘 어린이 인신매매도 많다는데... 개누무 새끼...”
며칠 후 학교가 끝나고 준하가 나를 불렀다.
“철아, 우리 집 갈래?”
준하의 말에 대꾸도 못하고 집으로 털래 털래 걸어왔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방 한구석에 자랑스럽게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었다.
누나와 동생과 나는 길길이 날뛰며 좋아라 했다.
겨울이면 연탄 두 세장을 외상으로 가져올 만큼 가난했던 우리 집에 어떻게 텔레비전이 올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 뒤로 아버지의 자전거는 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징계를 받아 학교에 불려 가시던 날에도 내게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던 큰 소나무 같던 아버지.
차라리 야단이라도 치시지.
그런 아버지가 지금 몸에 링거 바늘을 꽂은 채 호스피스 병원에 누워 가쁜 숨을 쉬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으로 가자고 보채시더니 이제는 그럴 기운조차 없으신가 보다.
뼈만 앙상히 누워계신 아버지의 발을 쓰다듬다가 문득 아버지의 오른발 두 번째 발가락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젊은 시절 길에서 청소를 하시다가 트럭에 치이며 상처를 입어 결국 발가락을 잘라야 했다.
이제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고 역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되었나 보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텔레비전이 되었고 두 번째 발가락은 내 생명이 되었나 보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을 주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데 그 예수가 지금 내 앞에 누우신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