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함께한 9개월

아버지의 유산

by 박철

아버지의 유산


4월, 전혀 특이할 것도 없던 어느 날.


갑자기 10kg 가까이 살이 빠진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 병원에 갔다.

“보호자만 잠깐 남아 주세요.”


물끄러미 돌아와 앉았다.


“아들이신가요?”


“예.”


“말기 암입니다. 뼈까지 전이된...”


의사는 무척 건조한 말투로 컴퓨터 화면과 나를 번갈아 보며 이야기했다.

순간, 나는 무슨 드라마의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적당한 표정과 대사를 생각했지만 딱히 그럴싸한 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일정이 잡히면 며칠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으시지요.”

“고칠 수 있나요?”

“아니요.”

“그럼 검사는 왜?”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그럼 얼마나?...”


“길면 1년...”


아버지의 사망예고를 받는데 단 1분이면 족했다.


담담한 척 적당한 대사를 치고 진찰실을 돌아 나오는데 어지럽고 코피가 날 것 같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을 했다.


“1년?, 지가 의사면 의사지 나이도 젊은 사람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뭐라냐?”


나는 무척 쿨 한 척 대답을 했다.


“암 말기래요. 근데 제가 아는 교회 권사님 아버지도 암 말기였는데 아무 치료도 안 하고 10년 잘 살다 가셨대요. 요즘 암은 감기예요 그냥 감기. 다 걸려요.”

아버지는 나의 말에 충격을 받으신 건지 아닌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담담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 80이 넘도록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관절염, 소화제약 한번 안 드시던 무쇠 같던 아버지.

그로부터 9개월.

아버지와 나 그리고 우리 아내는 암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모든 일상의 스케줄은 아버지의 검사와 진료,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에 맞춰 짜야만 했다.

모든 음식은 암을 극복하는 식단으로 짜였으며 하루 종일 암과 관련한 인터넷 정보를 검색했다.

전화기는 늘 24시간 대기를 하고 즐거운 일상이나 기분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다.

직장, 집, 심지어 잠자는 시간조차 암을 생각하고 암과 싸워야 했다.

암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모두를 점령해 버렸다.

하지만 나와 아내가 아닌 누가 아버지의 암에 관심이나 있었겠나.

나는 다른 사람이나 가족들 앞에서 조차 감정을 감추고 즐거운 척을 해야 했다.

그랬다.

남들에게 무슨 위로 따위를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 앞에서도 그랬다.

“아버지 안 죽어요, 최소 10년 더 살아요. 걱정 말아요.”

아버지가 항암약을 드시고 부작용으로 몸이 퉁퉁 부었을 때도 “얼굴에 살이 오르니 오히려 보기 좋네요.”했다.

참 이상했다.

별로 슬프지도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나와 아버지에게 올 거라고 인정하지 못했었나 보다.


가끔 아내는 물었다.

“당신 괜찮아요?”


“글쎄 뭐 별로...”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진료 후 아버지를 댁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로.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추고 있는데 자동차 앞 유리에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져내렸다.


"투둑 투두둑, 우두두두둑"


순간 내 두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견고하게 버티던 감정의 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해 저물어 가는 어스름한 아스팔트 차 안에서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아무도 없는 차 안은 통곡하기에 적당했다.


"빵빵"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한참 울리도록.


병원에 입원한 어느 날.

아버지 병실 침대 옆을 지키고 있는데 누군가 낯선 이가 침대 맞은편에 마주 앉았다.


“누구세요? “

“죽음이요.”

“아, 죽음... 그렇군요.”

“그냥 지나칠 수는 없나요?”

“이기적인 생각이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요?”

“처음부터.”


“아버지를 언제?...”


“글쎄요.”


수개월 동안 죽음은 아버지 곁에 머물렀고 나는 오히려 죽음과 친해진 느낌이었다.

알게 되었다.

죽음은 생각보다 늘 가까이 있었고 나에게도 오리라는 것을.

죽음을 만나며 나는 오히려 삶을 생각했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몸은 죽고 영혼만 살아남지요."


"영혼은 어떻게 되나요?"


"천국 아니면 어두운 어딘가로 가지요."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나는 것 아닌가요?"


"아니에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이후로도 죽음은 애써 아버지를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야말로 아버지의 죽음을 서둘렀는지 모른다.

먹으면 토하고 링거바늘은 더 이상 꽂을 곳이 없을 만큼 혈관이 말라 비틀어졌다.

마약 성분이 함유된 진통제는 끊임없이 투여되며 아버지의 의식을 말려버렸다.

진통으로 몸이 뒤틀리지 않도록 아버지의 팔과 다리는 병원 침대 손잡이에 묶여야 했다.

내 안에서는 끊임없는 외침이 들렸다.


"이건 사는게 아니야."


하루하루의 삶은 그 자체로 치열한 투쟁 같은 것이었다.

불효자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소망했다.

차라리 아버지의 죽음이 좀 더 빨리 오기를.

하루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이야기했다.


"아버지, 조금만 견디세요. 곧 좋은 곳으로 가실 거예요. 아픔도 고통도 없는..."


아버지는 희미한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 제가 끝까지 있을 께요. 제가 뒤처리 다 할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평안히 가세요."


오래 산다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생각했다.

오래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아도 잘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

죽음에게 말했다.


"좀 서둘러 줄 수 없나요?"


"준비가 다 되어야 가실 거예요."


"무슨 준비요."


"차차 알게 될 거예요. 당신 스스로..."


죽음이 함께 머물던 9개월.

아버지의 병원 침대 옆을 지킬 때면 늘 맞은편에 앉아있던 죽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남은 삶을 새로 써 내려가는 일기장이 되었다.

내 하루의 가치와 무게는 그만큼 더 크고 무거워졌다.

나의 욕망과 아버지 통장에 남아있는 써보지도 못한 돈 몇 푼을 생각했고 내 남은 삶의 계획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오후 5시 45분."


아버지의 얼굴은 더는 고통이 없는 평안한 표정이 되었다.


누나와 여동생은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 안고 아버지가 너무 차갑다며 동동거리며 우는데 의사는 담담하게 사망진단서를 내게 툭 내밀고는 돌아서 가버렸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의 마음은 오히려 한없이 잠잠했다.


아버지의 영혼이 누나와 동생을 지나 스르르 일어났다.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나는 아버지를 보며 미소를 보냈다.

순간 눈앞에 푸르고 울창한 숲이 펼쳐 졌고 멀리 한없이 눈부신 길로 아버지는 환한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애써 부르지 않았다.

순간 숲의 문이 닫히고 어두운 터널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온 나는 더 이상 아버지 없는 병실에 서 있었다.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토요일 아침,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 병문안을 마치고 친한 분의 아들 결혼식에 가려고 말끔히 차려입고 나온 검은 양복은 상복이 되었고 빨간 넥타이는 검은 넥타이로 바뀌었다.


그제서야 할바를 마친듯이 죽음은 나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이제 갈게요.”

“어디로?...”


“누구나 가는 그곳.”

“미리 알려라도 주시지.”


“어젯밤, 내가 알려 드렸는데...”


아차!

나는 그제 서야 어제 새벽꿈이 불현듯 떠올랐다.

꿈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내게 아버지의 사망진단서라며 10장을 주기에 받고 말았다.

그리고 정말 그날 오후 의사는 사망진단서 10장을 내게 내밀었다.

“아, 그랬군요. 몰랐어요.”


“슬퍼말아요. 그리고 남은 삶을 소중히 살아요.”


죽음은 내게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는 병실을 돌아 나갔다.



죽음은 아버지에게만 아니라 내게도 왔었나 보다.

어쩌면,

어쩌면 아버지는 내가 삶의 의미를 다 알 때까지 힘겹게 기다리셨나?

이것이었나?

아버지가 내게 주고 싶었던 유산은.



죽음이 삶의 선생일줄이야.

아버지가 떠나고 매일아침 일어나면서 나는 묻는다.


“혹시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죽을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는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버지는 죽었다.

그러나 죽음이 생명의 끝인 건 맞지만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끝이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사는 모든 시간과 공간, 아버지가 머물던 모든 곳, 아버지가 쓰던 물건 하나하나마다에 늘 함께하며 내게 조언을 하고 깨달음을 주며 내 걸음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Good bye"가 아니라 "See you"


어차피 먼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날 테니.


그런데 그때가 오기 전에 문득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어 지면 어쩌지?

혹시 이 밤 내 꿈에라도 오신다면 가슴깊이 안고 고백할 텐데.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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