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가는 길

by 박철

딸부자.

우리 장인, 장모님은 딸만 여섯을 낳았다.

딸만 여섯이면 서운하고 아들만 여섯이면 심각하다.

어쨌거나 아들을 그토록 바라셨건만 결국 그랬다.


우리 아내는 그중 둘째다.

나에게는 처형 한 명과 4명의 처제가 있다.

다 소중하고 아름답지만 그중에는 조금 더 예쁘게 생긴 처제도 있고 덜 예쁘게 생긴 처제도 있다.


처형의 남편인 손위 동서는 속마음은 따듯한 사람이지만 겉으로 보면 성격이 좀 괴팍하고 누가 보면 약간 조폭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처형은 그런 남편을 늘 사랑스럽다고 좋아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참 어지간하다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처제들은 결혼해서 자녀를 둘씩 낳았는데 조카들의 외모가 그리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들은 조카들을 만나면 귀엽고 예쁘다며 물고 빨고 난리가 난다.

하루는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조카들이 그렇게 잘생겼어?”


“아니, 좀 못생겼지.”


“근데 그렇게 좋아?”


“귀엽잖아”


“...”


외모와 상관없이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 눈에는 한없이 귀여운가 보다.

사람만 그런가.

그것이 돈이 되었든 명품 핸드백이나 시계가 되었든 그 대상의 가치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만큼의 가치를 갖는다.


가치는 사랑의 크기와 비례한다.

지금은 소천하신 강원도 홍천 사시던 외할머니는 방학이면 서울 사는 외손자인 나를 기다리셨다.

내가 고등학교 겨울방학 어느 날 외할머니가 병원응급실에 실려 간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나를 기다리려고 산 넘어 버스 정거장까지 지팡이를 잡고 가시다가 눈길에 넘어져 몸의 여기저기가 부러졌던 것이다.

사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나는 외가댁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매번 방학 때면 1시간이 넘는 산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나와 오지 않을 손자를 온종일 기다리셨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설 때마다 버스 문으로 손자가 내리기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손자, 손녀가 열 명도 더 되었지만 유독 나에 대한 사랑이 깊으셨던 것 같다.

내가 군에 입대한 얼마 후 할머니는 소천하시고 말았다.

그 당시 휴전선 전체에 비상이 발생하여 외박과 외출이 모두 정지되어 차마 할머니의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고향 언덕에 누우신 할머니의 작은 묘지 앞에 설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나는 눈길을 헤치고 찾아갈 그런 사랑, 그런 가치였나 보다.

내가 뭐라고...


먹고사는 일이 분주하다는 핑계로 불효한 손자는 몇 해 동안 홍천에 가지도 못했다.

조만간 할머니께 다녀와야겠다.


어린 손자를 기다리며 수없이 넘으셨을 홍천 여우고개에는 아직도 눈꽃이 피어있을까?

좁은 오솔길을 지나 사립문 넘어, 낡은 초가집.

여전히 할머니는 나를 기다리며 아궁이에 장작을 넣으며 뜨끈한 군불을 때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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