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사망신고를 하고 왔다.
자식으로서 못할 짓이 부모의 사망신고를 하는 것 같았다.
내 부모가 죽었다고 서류를 쓴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이일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아니면 누구에게 이일을 부탁하겠나.
결국 아버지의 세상에서의 마지막 존재를 내가 끊어내야만 했다.
보내드리고 싶지 않은 미련과 보내드려야만 한다는 사실의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불과 3주.
밥을 먹다가, 길을 걷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을 자다가도 울컥울컥 올라온다.
그리운 아버지.
언제 다시 보려나.
얼릴 적 아버지는 마을 언덕을 내달리는 나를 안고는 하늘높이 들어 올렸다.
까칠한 턱수염을 내 볼에다 부비면 나는 까르르했다.
누나와 동생은 저들도 해달라며 성화를 했다.
1년에 서너 번이나 더 싼 단칸 셋방을 전전하며 이사를 했지만 어린 우리는 한없이 행복했다.
가난이 뭔지나 알았겠나.
월급날이면 기름이 뚝뚝 묻어나는 종이 봉지에 통닭 한 마리를 사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보다 통닭을 기다리곤 했다.
아버지는 늘 닭의 머리와 뼈를 좋아했다.
“아빠 그게 맛있어?”
“응 아빠는 이게 제일 맛있어.”
“그게 왜 맛있어?”
“원래 머리가 제일 맛있어.”
아버지는 우리가 빨다 던진 뼈까지 씹어 먹었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가 닭의 머리와 뼈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노동판에서 억척스럽게 일을 했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치사하리만치 아꼈다.
자식에게 조차 절약을 강요했다.
구질구질하고 넉넉하지 않은 아버지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그토록 아끼고 감춘 한 푼, 한 푼까지 남김없이 주고 가셨다.
내가 그토록 비웃던 아버지의 재산이 내게로 상속될 때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뼈를 씹을 때 살코기를 씹던 아들은 아버지의 목숨값까지 다 먹어버리고 말았으니.
소천하신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아버지는 꿈에라도 한번 오지 않으셨다.
기왕 이리된 거 꿈에나 한번 오시지.
뭐가 그리 바빠 꿈에도 한번 안 오시나.
뭐가 그리 바빠 아들 얼굴 한번 보러 안 오시나.
아버지, 오늘 밤 꿈에라도 오소서.
아버지를 안고 실컷 한번 울어나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