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을 기념하며.
아버지의 아들로 아버지와 함께 거의 6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와 이별하는데 9개월이 걸렸고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100일을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세상이 그대로인 줄 알았다.
해는 여전히 떠오르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오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았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일상을 사는데도, 어디선가 비어 있는 자리가 느껴졌다.
그 자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무엇으로도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몰랐다.
말없이 지켜주는 존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아버지는 늘 말이 많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 가족을 향한 책임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아버지가 떠나신 뒤에야 알게 되었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전화 한 통, 식사 한 끼가 이제는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때 조금만 더 시간을 내었더라면, 한 번 더 웃어드렸더라면 하는 후회가 자꾸만 마음을 두드린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지만, 이제는 그 흐름이 더 또렷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나 자신’이다.
아버지가 계실 때 나는 아직 누군가의 자식으로 기대어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한 가, 이제는 내 차례가 되었다는 것.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나 역시 아버지 누우신 언덕에 눕게 되리라는 것.
아버지와의 이별을 통해 죽음을 바라본 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로 다짐했었다.
쓸모없는 집착, 욕심, 성공, 소유... 뭐 이런 것들을 덜어내기로 했었다.
그러나 100일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의 삶은 마치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처럼 습관의 중력에 이끌려 지나치게 열심히 살고 있다.
쓸모없는 열심, 부질없는 성공, 허망한 가치들이 다시 나를 끌어당기려 한다.
돌아보니 아버지는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다.
내가 내리는 선택 속에,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스며 있다. 그 사실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나를 더 바르게 살도록 이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버지를 향한 마음,
그리움.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며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아버지는 오늘도 천국에서 나를 지켜보실 테니.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도록,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에 웃으며 안아드릴 수 있도록.
아,
그토록 못 견디게 춥던 겨울이 끝내 가고
매화꽃이 하얗게 동산을 덮는 봄이 오거든
아버지 누우신 묘지에 꽃을 꺾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