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건
느리거나 혹은 빠르거나
언젠가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것.
죽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유한성은
아직 살아있는 것들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은
누군가의 삶의 의미를 싹 틔우는 거름이 되기도 한다.
장례식의 주인이 되어보지 않고서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이며
누군가에게는 미안함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이 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숱한 유산을 남기기도 한다.
하루, 하루가 쌓여서 생긴 의미들은 먼 훗날,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다.
지금 가던 길을 포기하면
살아온 날들의 자취들이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는지
알 길이 없는 원점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게 된다.
그저 같은 곳을 맴돌 뿐.
그러하니
더 이상 걸어갈 힘이 없을 만큼 지쳐있다 해도
가던 길을 멈추지 말고 가라.
그 길의 끝에서 그리운 사람, 이루고 싶었던 꿈
그리고 따듯한 식탁을 마주하게 되지 않겠나.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제가 아니라 내일 쪽으로 넘어져야 한다.
생각해 보라.
어디로 떠나겠는가.
결국 당신의 집, 당신의 마을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비록 조금은 초라한 집, 조금은 변변찮은 이웃이어도
나름의 위로와 마음을 터놓을 만한 이야기 상대가 아니한가.
누구에게나 돌이키고 싶었던 과거가 있게 마련이다.
지난날의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을 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슬픔은 누구도 쉽게 위로해 줄 순 없겠지만
자신과 상대방에게 조금 솔직한 마음으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고백할 수 있다면.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역시 밥은 혼자보다 둘이 먹으면 더 맛있지 않니?
너의 죽는 그날,
너를 기억해 주고 쓸쓸해해 줄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너의 죽음을 슬퍼해줄 한 사람이 있니?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 올지라도
하늘이 열리고 태양이 뜨는 아침이 오면
텃밭은 망가지고 남겨진 것이 없다 하여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을 봐.
가난하고 초라해 보이는 그들조차도 쉽게 행복을 찾아내며 웃곤 하지.
그러니 너도 웃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니.
있지.
비록 실패와 실수로 가득한 누구라도 작고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 해도
과거의 아픔과 상처들을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지 않겠나.
굶주린 사람에게 식사가 더 맛있게 마련이듯이
어제가 찬란했던 사람일수록 내일은 더 초라하고
어제가 비참했던 사람일수록 내일이 더욱 풍요롭나니.
어제 때문에 오늘을 슬퍼하지 말고
오늘 때문에 내일을 주저하지 말기를.
자,
이제 죽은 자들의 장례식을 하고
살아있는 자들의 노래를 부르자.
따듯한 사람의 위로와
작은 순간들의 변화는
결국 찰나와 영겁의 사이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시간의 조각들 속에서
삶의 일기장을 써내려 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