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렇게 그랬나

그 흔한 첫사랑의 이별이야기

by 박철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늘 함께이고 늘 같은 길로 가리라던 친구들은 현실이라는 빗장이 풀리자 각자의 길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건이는 연세대를 꿈꿨지만 결국 성균관대학으로, 어린 왕자를 좋아하던 유진이는 한양대 연극 영화과로 가서 작가의 길을 가리라 했고,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던 경은이는 성신여대 피아노 학과로, 운모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며 흥분하던 준호는 단국대로 갔고, 더러는 재수 또는 취업의 길을 가리라 했다.


입시 결과가 대부분 나왔던 어느 날 한 번은 학교친구 엽이네 놀러 갔다.

엽이는 우리 학교 전교 1등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전국애서 조차 1,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공부 좀 한다는 녀석들이 좀 자기중심적이고 친구관계가 좁은 편이었지만 엽이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의리가 있어서 두루 평판이 좋았다.


엽이네 집은 처음이라 좀 낯설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엽이가 문을 열었다.

잔디 깔린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들어서니 집안은 의외로 너무 조용했다.

그런데 엽이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엽아 부모님 안 계시니?”


“계셔.”


“그런데 왜 이렇게 집이 조용해?”


엽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내가 서울대 법대를 썼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를 않아서 어머니가 머리 싸매고 누우셨어...”


놀라운 일이었다.


전국에서도 1,2등을 다투던 엽이가 대학에 떨어지다니.

학력고사에서 무슨 큰 실수라도 있었던 것일까?


집안 분위기가 침울한데 내가 오래 머문다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얼마 후 서둘러 조용히 엽이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엽이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다만 수석이 아닌 차석이라서 집안 분위기가 침울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이런 젠장...”


축하를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참 우스운 상항이었다.


학교 정문에는 엽이의 서울대 법대 합격 축하 현수막이 자랑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결국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결심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학원 등록을 포기하고 인천의 모 기술학교로 입학을 준비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내내 사고를 치고 담배와 술에 찌들어 살던 아들에게서 더 무슨 희망을 기대할 수 있었겠나.


아버지는 처음에는 나름 기대를 하셨던 것 같다.

고 3 때 내게 말씀도 안 하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육군사관학교 원서를 부탁하시려 어려운 형편에 안주머니에 봉투까지 준비해 가신 아버지는 봉투를 내밀어 보지도 못하고 보기 좋게 면박만 당하고 돌아오셨다는 것을 나중에나 알았다.


기술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갔을 때 적잖이 놀랐다.

500명이 더 되는 합격자 중에서 내가 만점으로 전체 수석을 차지한 것이었다.

그저 합격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지만 결과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고, 입학식에서 내가 대표자 선서를 했다.

고등학교 때 늘 부정적인 일들로만 이름이 오르내리던 나로서는 무척 생소하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입학 후 어느 날 학과장님께서 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학과장님 찾으셨습니까?”


“어~ 자네가 조선인가, 대단해. 학교 개교 이래 만점자는 처음이야.”


교육비, 기숙사비등을 전액 면제받아 아버지께는 죄송한 마음을 조금 갚아 드렸다.



기숙학교였기에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불 꺼진 실습실 실습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입시 공부를 했다.

결국 그해 겨울 기술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는 대학에 합격을 했다.

대학을 합격하고 나니 나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무척 달라졌고 지난 몇 년 간의 방황과 갈등들도 이로써 다 끝나는 듯했다.


낯선 행복감에 젖어 평화로운 일상을 지내며 대학 입학식을 기다리던 2월 어느 날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으로 들어서는 데 아버지가 내게 우편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받아라.”


“이게 뭐예요?”


건네받은 봉투 안에는 빨간색의 군 입대 명령서가 들어있고 입대일이 불과 한 달 도 남지 않고 나온 명령서에 연기할 겨를 도 없었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좀 뒤로 미루고 어차피 갈 거면 일찍 가여겠다는 생각에 굳이 연기를 할 것도 없이 입대 준비로 마음이 분주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교회 청년회에는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던 1년 선배 누나들이 서넛 있었는데 특히 은정이 누나는 나를 한참 어린 막내 동생 대하듯 허물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곤 했고, 형미 누나는 회사에서 받아온 영화 티켓을 내게 선물로 주곤 했으며 기진이 누나도 역시 내게 편하게 대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누나들과 함께 다니는 낯선 얼굴이 보였는데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름은 경수라고 했다.


먹물처럼 검은 단발머리에 얼굴은 희었고 커다란 눈망울이 고왔다.

발랄한 누나들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경수 누나에 대한 야릇한 감정이 내 안에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무척 조심했다.

누나들은 항상 나를 한참 어린 막내 동생 아끼듯 했는데 그런 내가 누나들 중 한 명을 이성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누나들에 대한 배신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하면 누나들과의 편했던 관계가 모두 어그러져버려 누나들은 그런 나에게 무척 실망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누나들과 함께할 때면 다른 누나들에게는 반가운 척을 했지만 오히려 경수 누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애쓰곤 했고,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할 때도 누나들의 이야기에는 맞장구치며 웃곤 했지만 경수 누나의 말에는 애써 딴청을 하곤 했다.

누나들은 나의 입대를 무척 안타까워하며 “선이 없으면 우리 심심해서 어쩌냐.” 하는 식의 푸념을 하곤 했다.


입대를 며칠 앞둔 일요일 오후 누나들은 마지막으로 밥이라도 먹여서 보낸다며 나를 불러냈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던 네 명의 누나들은 나를 돌아보며 모두 놀라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선아, 왜 벌써 머리를 깎았니?”


“그래야 밥을 많이 사줄 것 같아서...”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멋쩍게 쓰다듬으며 나는 농담을 던졌지만 평소라면 나의 농담에 깔깔대고 웃었을 누나들은 생각보다 침울해 있었다.


은정이 누나가 내게 메모지를 건네며 이야기를 했다.


“선아, 군대 가면 누나에게 편지할 거지, 너 누나들 잊으면 안 된다. 이거 우리 집 주소니까 꼭 편지해. 과자랑 사탕도 잔뜩 보내줄게.”


은정이 누나의 메모지를 받아 넣으며 나는 꼭 그러겠다고 몇 번이고 약속을 했다.



입대일 새벽, 군대 가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부엌에서 손수 아침밥을 지었다.


그토록 완고하고 가부장적이던 아버지가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하는 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치 죽으러 가는 아들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듯.


옷을 입고 잠시 방에 앉아있는 내게 밥상을 밀어 놓고는 말없이 나갔다.

평소 따듯한 말 한마디 안 하던 아버지는 잘 다녀오라거나 건강하라는 격려 따위는 없었다.

애써 밥그릇을 비우고 대문밖에 나서니 저 발치에서 아버지가 찬바람 부는 길가에 택시 한 대를 잡고 서있었다.

평소 버스비도 아까우니 버스비 낭비하지 말고 서너 정거장은 걸어 다니라고 하시며, 혹시 택시라도 타게 되면 돈 낭비 한다고 불같이 역정을 하던 아버지는 외아들의 입대 길에 함께 가지 못하는 미안함이 크셨나 보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군 입대 후 내 옷가지며 소지품들이 작은 소포가 되어 집으로 왔을 때 아버지는 그 소포 꾸러미를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울지 않던 거칠고 무쇠 같던 아버지가.



군 입대 후 몇 주간의 신병교육을 마치고 동기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대배치를 받았다.


나와 동기들은 소지품으로 가득한 긴 더블 백을 등에 지고 군용 트럭에 올라 흙먼지 날리는 길로 내달렸고 트럭은 중간중간 멈춰서 몇 명씩을 내려주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나와 동기 두 명은 맨 마지막까지 남아서 민통선 표지판을 지나 강원도 양구의 낯선 산길을 지나고 계곡을 지나 더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더 이상 민가도 사람도 없는 산속에 다다랐다.

“단결”

정문 위병의 힘찬 구령소리가 온 산에 쩌렁쩌렁 울리는 곳에서 멈춘 트럭은 우리를 낯선 연병장 구석에 내려놓고 무심하게 지나온 먼지 속으로 사라져 갔다.


토요일 오후 연병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병사들이 우리 주위를 에워싸고는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모여들어 이름이 뭔지, 어디서 왔는지, 축구는 잘하는지 따위의 질문을 던지며 긴장한 채 차렷 자세로 서있는 우리를 보며 히죽거렸다.


우리가 배속된 부대는 일명 GOP부대라는 최전방 부대로 몇 개월씩 교대로 휴전선 철책을 지키다가 또 몇 달은 후방으로 내려와 훈련을 받는 부대였다.


군 생활은 힘든 일상이었지만 견딜 만했다.

다만 이 삭막한 산속에서 3년을 보내야 한다는 답답함과 막연함이 가슴을 짓누를 때가 가장 힘들었다.


자대 배치가 끝나고 조금 여유가 생긴 어느 토요일 오후 잠시 한가한 때를 골라 편지를 썼다.

주소를 쥐어주며 편지 쓰라던 은정이 누나의 당부가 떠오르기도 했고 딱히 편지를 쓸 만한 다른 곳이 따로 없기도 했다.

누나들 각자에게 모두 편지를 쓰려니 우습기도 하고 시간도 많지 않아 네 명 누나의 이름을 모두 넣어서 편지를 섰다.


“TO 은정, 형미, 기진, 경수 누나들에게.”


밥을 사줘서 고마웠다거나 우리 부대가 어디에 있는지, 군생활의 일상들, 나의 건강 등에 관한 것들을 소소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어느 날 내무반에 들어온 중대 선임하사가 부대원들에게 각자의 우편물을 나누어주었다.


“조선”


나는 내 이름이 불리자 약간 당황했는데 누나들이 굳이 답장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편지 봉투를 받아 들고 발신자 이름을 보며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편지봉투에는 가장 친했던 은정이 누나, 혹은 형미 누나의 이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경수”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내무반을 나와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막사 처마아래 담벼락에 기대앉아 봉투를 열었다.

두툼한 편지 봉투 안에는 편지 두 장과 함께 사진이 세장 들어 있었다.

경수 누나의 증명사진 한 장과 활짝 웃으며 풍경 앞에 경수 누나가 서있는 사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과 군 생활을 잘 마치고 나오는 그날까지 기다리겠다는 이야기들이 쓰여 있었다.


전투화가 비에 다 젖는 줄도 모르고 나는 한참을 앉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게 되리라는 걸 한 번도 상상해 보거나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잘생긴 외모도 내세울 만한 특별한 배경도 없는 나였고 오히려 거칠었던 고등학교 시절과 가난하고 불우했던 가정 형편으로 늘 다른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위로나 걱정의 대상이었던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차마 만질 수 없는, 아니 만지면 안 되는 그가 불현듯 내게 다가왔고 내가 그의 그리움이 되고 편지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현기증 나는 일인지.

나의 벙어리 같은 사랑과 그녀의 수줍은 그리움이 어느 낯선 동부전선의 산기슭에서 만났다.

만약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는 죽음이어도 좋았다.



그 후로 우리는 서너 번의 편지를 더 주고받았고 나는 더 이상 “누나”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너”라거나 이름을 부르지도 못했다.


사진을 군용 수첩 비닐 커버 사이에 끼우고 가슴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사진은 한 겨울 온몸을 도려내는 GOP의 눈보라 속에서, 태양이 작렬하는 한여름의 참호 속에서도 늘 나와 함께였고 죽을 것 같은 극한의 훈련과 끝없는 행군의 밤길에서 마취제처럼 나의 위로와 안식이 되었고 내가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꼭 1년 만에 첫 휴가를 나왔다.

깊은 산속 비무장지대의 적막함에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1년이라는 시간 만에 도시의 거리는 너무나 낯설었고 나는 이방인처럼 길을 걸었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거기에는 은정이 누나와 기정이 누나도 함께였다.

늘 반가운 누나들이었지만 그날은 야속했다.

굳이 함께 나올 것까지야.

아마도 경수는 혼자 나오기가 수줍고 어색했나 보다.

다행히도 은정 누나와 기정 누나는 차를 한잔 마시고 먼저 일어났다.

우리 둘은 모두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어색했고 수줍은 나머지 무슨 이야기들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왜 그렇게 말을 못 했는지 왜 그렇게 분위기가 어색했는지를 생각하며 다음 만남 때는 좀 더 편하고 즐거운 이야기들로 채우리라 다짐을 했다.



부대 복귀를 앞둔 얼마 후 두 번째 만남은 오직 경수와 나 뚤 뿐이었다.

길이 내려다보이는 2층 카페에 마주 앉았다.

나도 경수도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을 꼭 모두 하리라고 결심을 하고 만난 듯했다.


경수는 내가 묻기도 전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를 좋아한다는 것과 제대를 하면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까지 단호하고 분명하게 했다.

나는 너무 당당한 그녀의 말에 다소 당황을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을 했다.

단 두 번의 만남에서 결혼을 약속하다니 남들이 들으면 웃을 것 같은 너무 빠른 우리의 결심은 어쩌면 이미 오래된 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카페를 나와 헤어지려는데 경수가 포장된 상자가 들어있는 종이가방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게 뭐야?”


“응, 회사에서 커피 선물 세트를 받았는데 너 주고 싶어서...”


난 미처 뭔가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기에 받기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때 우리의 만남과 약속을 기념할 만한 무엇도 남기지 못한 것과 그녀의 따스한 볼에 입맞춤이라도 해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물으셨다.


“선아, 그게 뭐야?”


여자 친구의 존재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그저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어.. 커피, 고생했다며 친구가 하나 주더라고.”


어머니는 포장지를 뜯으며 좋아했다.


“와~ 커피세트네. 마침 커피도 떨어졌는데 잘 됐어.”


그런데 상자를 열던 어머니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이거 왜 다 깨져있니?”


상자 안을 들여다본 나도 깜짝 놀랐다.

상자 안의 커피가 담긴 커피 병 두 개가 모두 깨져서 상자 안에 커피 알갱이들이 흩어져있고 커피 잔 두 개도 모두 깨져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상자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선아, 너 이거 들고 오다가 떨어뜨렸니?”


“아니, 잘 들고 왔는데...”


깨진 유리조각과 상자를 조심스럽게 정리하여 버리고 나는 방에 들어와 잠시 생각을 했다.


“경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지만 미안해할 경수를 생각하니 차라리 아무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대로 복귀를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민통선의 봄은 아름다웠다.

나무마다 노란 새순이 돋고 지뢰 표지판 너머로 보라색 말너울과 노란색 금계국이 능선에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일렁이면 장관이었다.


얼마 후 경수에게 편지를 썼고 역시 답장을 받았고 일상은 행복했다.


그런데 그다음 편지를 보낸 뒤로 한 달이 다 되도록 답장이 없었다.

너무나 바쁜 나머지 답장을 할 수 없었거나 혹은 내 군사 우편이 누군가의 실수로 누락이 되었거나 그도 아니면 전방이다 보니 부대사정으로 우편물 배송이 늦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이유들로 나를 위로했다.



한 달쯤이 지난 어느 날 다시 편지를 썼다.


답장 없이 편지를 쓰는 것은 처음이라 뭐라고 써야 할지 생각이 나지는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의 일들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갔고 한 달, 두 달 답장 없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기다림은 초조함으로 변해갔다.

중대 선입하사가 우편물을 부대원들에게 전달해 주러 오면 나는 온몸의 피가 멈춘듯한 긴장감속에 내 이름이 불러지기를 기대했지만 선임하사의 손이 텅 빌 때까지 내 이름은 없었고 무심한 선임하사가 돌아서 나가면 나는 갈라진 입술을 물어뜯었다.


비무장 지대로 분대 야간 매복 작전을 나가면 얼굴에 검은 위장크림을 바르고 판초우의를 뒤집어쓴 채 칠흑 같이 어두운 참호 안에 짐승처럼 숨어 엎드려서 적이 올 길을 응시하며 새벽이 올 때까지 많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왜 답장을 못 하는 거지?

도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를 향한 그 고백과 다짐은 왜 그토록 쉬운 말장난이 되었는지?

무엇이 경수의 마음을 빼앗아 갔는지 들을.


한 번 더 편지를 써서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간청을 해볼지, 다음 휴가까지 만이라도 기다려 달려들었는지 아니면 날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라도 말해 달라고 애원을 해볼까도 생각을 했다.


전선의 밤, 짝잃은 소쩍새는 민통선의 밤을 울었다.

철책선에 이슬이 맺히는 새벽이 올 때쯤이면 나는 늘 같은 대답 앞에 서있었다.


더 이상 편지를 쓰는 것은 그에 대한 호의가 아니야.



그를 사랑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그가 편히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나를 타이르곤 했다.


쉽게 얻은 사랑은 예측할 수 없는 대가가 숨어있었으며,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 록,

휴전선 철책에 구속될수록,

그리움은 나를 침몰시켜 같다.

내 의지로 참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리움이 비린내 나는 집착이 되어가는 걸 느끼며

나는 더욱 초라해지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작고 사소한 기억만으로도

내 안의 허수아비는 크게 흔들거렸다.



민통선의 겨울.


발목이 빠질 만큼의 눈이 왔고 전선의 겨울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며 부대 내의 모든 수도꼭지를 얼려버려 더 이상 물을 내지 못했다.

중대원들은 돌아가며 부대 옆 계곡으로 나가 얼음을 깨고 생활용수를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담아 내무반 베치카 난로 위로 옮기는 것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우리 부대는 머지않아 동부전선 “피의 능선”이라 불리는 휴전선 철책 GOP로 올라가 교대 근무를 앞두고 있었다.

GOP로 올라가기 전날 나는 선임에게 물 뜨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계곡으로 갔다.


누군가 깨 놓은 계곡 얼음구멍에서 물을 떠올려 두 개의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물을 채우고 나서 눈 덮인 계곡 위에 쭈그리고 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텅 빈 계곡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편지들과 사진들을 꺼냈다.

빛바랜 편지지를 다시 펼쳐보며 이제는 경수를 여기서 보내주기로 했다.


얼음이 보일 때까지 눈을 둥글게 헤쳐내고 라이터로 편지지에 불을 붙이려는데 “휘익~”몰아치는 강바람에 자꾸만 라이터 불이 꺼졌다.

애써 두 손을 모으고 불꽃을 살려 편지지에 불을 붙였다.


오래된 편지지는 금세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 위로 다시 다른 편지를 올려 태웠다.

검은 꽃잎처럼 재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흩어졌다.


빨갛게 타오르는 편지 위로 사진을 마저 올리려다 멈칫했다.

아직도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경수의 얼굴이 뜨거울까 봐 겁이 났다.


움켜쥔 주먹을 깨물며 사진을 불에 올리는데 “윽”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흘러 턱까지 내려와 얼어버렸다.


편지와 사진을 태운 연기는 마치 전선의 초연처럼 하늘로 흩어지고 한 줌의 재만 남은 인연은 그렇게 민통선의 눈밭에 묻혔다.


너무 짧았던 사랑은 한여름의 꽃처럼 홀씨를 내기도 전에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지름길로 왔던 사랑은 결국 그 길로 총총히 사라져 갔고,

운명이 내게 주었던 잠시의 선물에 나는 결국 가격을 지불해야만 했다.


“조선~”


부대 쪽에서 나를 찾는 강상병의 외침이 들렸다.


“일병 조선~”


관등 성명을 외치며 출렁거리는 물통 두 개를 힘겹게 들고 부대 쪽으로 뛰었다.



다음날 새벽, 진눈깨비 날리는 연병장에는 완전 군장을 한 병사들의 결의에 찬 군가와 함성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선두가 위병소를 빠져나가고 모든 대열은 피의 능선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진눈깨비는 어느덧 함박눈이 되어 병사들의 어깨에 걸린 M16 소총과 검은 재가 덮인 계곡 위에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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