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내게 제발 죽어달라고 말했다.

[피]로 얼룩진 명절

by 박철


아내와 함께 살아온 지 벌써 32년.

아내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리다.


아무리 부부사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허물이 없어졌다 하여도,

자신의 남편이자 세 딸의 아버지요 한 가정의 가장인 내게 면전에 대고 아내는 말했다.


“제발 죽어줘, 당신 때문에 내가 못살아.”


더구나 결혼 한지 3개월도 채 안된 큰딸이 사위와 함께 인사를 온 명절날 사위와 딸 앞에서 이런 말을 내게 하다니.


내 인생은 모두 버리고 오직 가족을 위해 지난 30년을 피땀으로 살아왔건만

이런 소리를 듣다니 배신감을 넘어 자괴감까지 들었다.


아무리 무능력한 남편에게라도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아내의 말에도 가정의 평화와 사위와 딸을 위해 참았다.

나 하나 바보되어서 가정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와 아내, 큰 딸아이와 그리고 사위.

우리 넷은 긴장한 얼굴로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내는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딸에게 조용히 말했다.


“넌 자리 좀 비켜주겠니.”


막내는 뭔가 긴장된 분위기에 슬며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식탁에 마주 앉은 큰 딸아이가 말했다.


“점백이지?”


아내가 말했다.

“광 값은 500원.”

사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쌍피도 파나요?”


내가 대답했다.


“음, 당연하지.”



처음에는 4명 개인전처럼 진행되던 고스톱은 어느 순간부터 부부대항전 양상으로 변질되어 갔다.


현금이 없어서 돈 없이 참가한 나는 아내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의 돈에 손을 대자 처음에는 살짝 째려보던 아내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판이 서너 번 돌고 조금씩 그 액수가 커가자 아내가 자꾸 내게 눈총을 줬다.


사위와 그의 여자는 의외로 강했다.

명절 인사를 오면서 화투를 챙겨 왔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이것들이 장난이 아니구나.”


아내와 나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내가 내게 버럭 소리를 쳤다.


“여보, 당신이 죽어야 내가 광이라도 팔지.”


“나도 패 좋아.”


“그러면 잘 치든가, 당신 때문에 광도 못 팔고 난 뭐가 돼. 여보 제발 죽어줘.”


사위와 그의 여자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위의 여자에게 말했다.

“세영아, 가족끼리는 돈을 잃어주려고 고스톱을 치는 거란다.”

딸아이는 패를 뒤집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사위와 그의 여자가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고 돌아간 뒤 우리 부부는 심각한 얼굴로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아내는 내게 소리쳤다.

“여보, 우리 1,200원 땄어요.”


아내를 돌아보며 나는 두 손을 추켜올렸다.


“거봐, 광보다 [피]가 짱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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