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 아니라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학기 초, 어느 아침 조회시간.
조금 긴장한 얼굴로 한 전학생이 선생님을 뒤따라 교실로 들어왔다.
“자, 오늘부터 우리 반에 전학 온 학생이야. 박수로 환영해 주자.”
선생님의 말에 모두들 어색한 박수를 쳤다.
조금 수줍게 선 여학생은 진초록 칠판 앞에 서니 하얀색 원피스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안녕, 내 이름은 이수원이라고 해 반가워. 잘 지냈으면 좋겠어.”
검은 단발머리는 창문 너머 들어오는 봄 햇살과 바람에 찰랑였다.
까만 눈동자와 꼭 다문 입술.
“얘들아, 오늘은 새로 짝을 정하는 날이니까 모두 복도로 나가서 키순으로 줄을 서세요.”
복도 양쪽으로 한 줄은 남자, 한 줄은 여자가 키순으로 적당히 섰다.
선생님이 앞뒤로 다니며 키 높이에 따라 순서를 조정했다.
“넌 앞으로 오고 넌 뒤로 한 칸 가면 되겠어.”
수원이는 맨 앞에서 15번째, 나는 앞에서부터 17번째.
나는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는 동안에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두 명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느 정도 키순이 정해지자 앞에서부터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짝이 되어 교실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내가 순서를 잘못 세었거나 선생님이 갑자기 순서를 바꾸면 어떻게 하나 하는 긴장감과 흥분으로 입장 순서를 기다렸다.
“다음, 철이랑 수원이 들어가.”
선생님의 이야기가 “쿵” 하고 내 가슴에 떨어졌다.
새로 자리가 정해지고 교실은 무척 활기찼다.
짝이 된 우리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넌 시골에서 전학 왔니?”
“아니.”
“그럼 어디 학교에서 전학 왔어?”
“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를.
“그럼 어디서...?”
“ 난 지난달 스위스에서 왔어.”
나는 깜짝 놀랐다.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눈 덮인 스위스.
“스위스?”
“응, 우리 아빠가 5년 전 스위스로 발령을 받아서 온 가족이 스위스에서 살았다.”
“너희 아빠는 뭐 하는 분이신데...?”
“대사관에서 일하셔.”
수원이는 조용했지만 간혹 까르르 웃기도 했다.
목과 팔이 희었고 손은 작고 단정했다.
특히 고개를 돌릴 때마다 흙단 같은 단발머리는 빛을 받으며 은빛으로 부서지며 흩날렸다.
“넌 어디 사니?”
갑자기 수원이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다.
“물푸레골.”
“멀어?”
“가깝다.”
“너희 집은?”
“기자촌.”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붙여진 동네 이름이었다.
인근에서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동네였다.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인.
다음날 아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일찌감치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철아, 왜 이렇게 일찍 가니. 학교 문도 안 열었겠다.”
엄마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나서 뛰다시피 학교로 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학교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점심시간.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내 도시락은 사각형의 누런색 양은 도시락이었다.
도시락은 늘 신문지로 여러 겹 둘둘 말려있었다.
신문지를 펼치고 뚜껑을 열면 위쪽에 작은 공간이 반찬이고 나머지가 밥으로 채워져 있었다.
반찬은 검정 콩자반, 멸치볶음, 김치 중 하나였다.
콩자반이 들은 날은 밥에 온통 검은 물이 들었고 김치가 들은 날은 벌겋고 시큼한 냄새가 밥 위에 번졌다.
가끔 김치 국물이 넘쳐 국어책이나 산수책 한 부분이 누랬다.
수원이 도시락은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있었다.
동그란 통 모양의 보온 도시락은 위에서 돌려 열었다.
맨 위에 반찬통, 두 번째 국, 세 번째가 은빛 나는 밥통이었다.
밥에서는 아직도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런 도시락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반찬통은 삼등분으로 나뉘었는데 계란말이, 분홍색 메추리알 같은 것, 장조림이 들어있었다.
반찬들은 각각 은빛 나는 알루미늄 포일로 한 번 더 감싸져 있어서 서로의 국물이 침범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내 도시락을 손으로 가리고 등지고 앉았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창피했다.
등 뒤에서 수원이 내 등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철아, 이거 먹어보련?”
수원이가 반찬통을 내밀었다.
“이게 뭐냐.”
분홍색 메추리알 같은걸 하나 집어 들었다.
“비엔나소시지.”
처음 먹어보는 맛,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끼한 맛이었다.
더 권해서 하나를 더 집어먹고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
도시락을 다 먹고 잠시 있으려니 수원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하나 더 꺼냈다.
역시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있었다.
둥글고 넓적한 통을 열었다.
세 칸으로 나뉘어 사과, 귤, 바나나가 손질되어 먹기 좋게 담겨있었다.
“점심시간에 과일을 먹다니...”
무척 놀랐다.
수원이의 권유에 과일 몇 조각을 또 얻어먹으며 그런 나 자신이 무척 싫었다.
“철아, 너 학교 끝나고 뭐 해?”
“그냥...”
“나랑 놀래, 친구가 없어 심심해 죽겠다.”
방과 후, 스탠드에 가방을 던져두고 운동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교실 건물 옆에 만들어놓은 화단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노란 민들레가 한창이었다.
“이건 무슨 꽃이니?”
“민들레, 나중에 홀씨들이 바람에 날라 가면 꽤 멋있다.”
내가 화단 옆 산수유나무 가지에 매달려 흔들었다.
노란 꽃들이 바람을 타고 눈처럼 내렸다.
수원이 산수유 꽃들을 따라 두 손을 펼치고 뛴다.
물끄러미 운동장을 바라보던 수원이 뛰어간다.
“그네 탈까? “
수원이 그네 줄을 잡고 손으로 흔들었다.
나는 옆 그네에 앉아 다리를 차고 높게 올랐다.
수원이 놀라며 웃었다.
“와~높다.”
나는 더 높이 발을 찼다.
그네가 뒤집어질 만큼.
봄 햇살에 눈이 부셨다.
수원이도 그네에 앉아 다리를 차지만 별로 오르지 못했다.
그네에서 내려 수원의 그네를 조심스레 밀어주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까르르 웃는다.
“와~높다.”
수원이의 스커트 자락이 나풀거리는가 싶더니 순간 “악” 소리를 지르며 그네에서 떨어졌다.
하얀 스타킹 무릎 위로 붉은 것이 배어 올랐다.
나는 가방에서 하얀 거즈 손수건을 꺼내 수돗가로 뛰었다.
어머니가 한쪽에 파란색 실로 내 이름을 새겨준 손수건이었다.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무릎을 지그시 눌렀다.
“아파?...”
“어...”
내 손수건을 받아 생채기 난 손바닥을 닦으며 천천히 일어선다.
다리를 앞뒤로 흔들어 보더니 콧등을 찡긋했다.
흙 뭍은 옷을 툭툭 털며 수원이 절뚝거리며 가방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그네를 발로 차 버렸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서는데 “삐약, 삐약” 소리가 요란했다.
매년 이맘때면 병아리 아저씨가 종이 상자에 병아리를 풀어놓고 팔았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구경을 했다.
수원이가 멀찍이서 나와 병아리를 번갈아보며 “와~”한다.
아이들을 비집고 들어간 나는 자리를 트며 수원이를 앉혔다.
수원이가 병아리 털을 손가락으로 살금살금 쓰다듬었다.
“아저씨 얼마예요? “
“100원.”
아저씨가 작은 봉지에 병아리 한 마리와 모이를 조금 담아 주었다.
수원이에게 봉투를 건넸다.
수원이 놀라며 받았다.
“어... 고마워.”
수원이는 걸어가면서 봉지 안의 병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병아리 키워봤니?”
“키워봤다.”
“잘 크니?”
“응, 근데 병든 애들은 잘 죽는다.”
수원이를 기자촌 입구까지 바래다주고 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다음날.
하얀 스타킹 안쪽으로 반창고 붙인 무릎이 두툼해 보였다.
“무릎은?”
걱정스러운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원이 말했다.
“병아리 이름 지었다.”
“뭔데?”
“나비, 노란 나비 같아서.”
상기된 얼굴로 온종일 손짓 발짓을 하며 나비 이야기를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수원이가 아침부터 표정이 어둡고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을 걸지 않았다
“어제 아빠가 나비를 마당 목련나무 아래에 묻어주었어.”
말이 끝나고 잠시 입술을 깨물던 수원이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책상 위에 놓인 수원이의 손등 위로 내 손을 올렸다.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수원이 내손을 힘껏 모아 쥐며 더 울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수원이 교실 밖으로 뛰어나간다.
순간 머리에서 리본 모양의 보라색 머리핀이 바닥에 “툭”떨어졌다.
그날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서 머리핀을 꺼내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밤, 머리핀을 꼭 쥔 채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되었다.
같은 반이 되기를 기대했지만 헛일이었다.
수원이는 2층에 있는 2반 나는 3층에 15반이었다.
4학년 5학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이면 계단을 내려가 수원이네 교실을 힐끗거리며 지나다니곤 했다.
까치발을 하고 창문 너머로 교실 안에 있는 수원을 몰래 넘겨다보곤 했다.
주머니 속의 보라색 머리핀을 만지작거렸다.
5학년이던 어느 날, 한 번은 교실 안에서 짝꿍 남학생과 깔깔거리며 웃는 수원을 보았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획” 돌아서서 5층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보러 가지 않았다.
6학년이 되어서도 수원이네 반은 4층, 우리 반은 5층이라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5층 우리 교실 근처 복도에서 수원이와 마주쳤다.
나는 흠칫 놀랐다.
못 본 척 지나치려는데 수원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
“잘 지내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는...”
“나도...”
망설이던 수원이 말했다.
“나, 멀리 간다.”
“어디?...”
“아빠가 다른 나라로 발령이 나서...”
“언제 오는데?...”
“아직은 잘 몰라.”
나는 머뭇거리며 주머니에서 리본 모양의 보라색 머리핀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수원이 내 손위의 머리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리핀을 받아 든 수원은 주춤하더니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파란색 실로 내 이름이 새겨진 하얀색 거즈 손수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았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코스모스가 얼굴을 때렸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흐릿하게 붉은 얼룩이 배어있었다.
아주 가끔씩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4층에 내려가곤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더 이상 수원을 볼 수 없었다.
졸업을 앞둔 6학년이 끝나가는 어느 가을, 몸살이 심하게 왔다.
처음이었다.
밥을 먹지 못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얼굴은 불덩이처럼 뜨거운데 몸을 떨었다.
“으응...” 가끔 나도 모르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아버지가 스프라는 걸 사다가 직접 끓여서 쟁반에 받쳐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이불 위에 앉아 뜨거운 수프를 몇 번 떠먹었다.
겨우 한 수저를 더 뜨고 가늘게 눈을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수프가 반 이상 남은 그릇을 받아 들고나갔다.
그리고 며칠을 더 앓았다.
수원은 불쑥 내게 다가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길을 갔다.
어린아이에게도 인연이라는 게 있을까?
없겠지, 그와 내게는.
잘 가라는 그 흔한 인사 한마디를 못했으니.
나에게 그는 손수건 위에 베어 오른 붉은 핏물.
그에게 나는 목련나무 아래 묻은 병아리.
혹시라도 그녀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웃겠지.
아니, 기억 조차 없으리라.
내가 추억하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 곁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던 내 슬픈 아이.
젊은 베르테르의 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 두고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운명이 나에게 주는 하찮은 불행을 되씹는 짓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를 추억하는 것은 무슨 간절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가 내 인생의 한 부분에 들어왔고
그 작은 돌다리 하나를 온전히 건너야만 다음 돌다리로 건너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움켜 쥔 내 작은 손에서 시간은 우수수 빠져나가 버렸고,
결핍이 많아서 더 간절했는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