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작아졌다

아버지의 아버지로 다시 태어나

by 박철

아버지가 작아졌다.


어깨동무를 하니 내 팔이 아버지 어깨에 걸치더라.


드시고 싶은 것 없냐고 하면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하신다.


필요하신 것 없냐고 하면

다 필요 없다고 하신다.


여행 가시고 싶은데 없냐고 했더니

가고 싶은 곳도 없으시단다.


그렇게 우람하고 당차시던 아버지는

몽당연필이 되었다.


삶을 다 쓰신 아버지의 연필에는

흑연이 별로 없어 보인다.

자꾸 그어보지만 써지는 것이 없다.


허리마저 휘어버린 아버지는

언제 부러질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발톱이 뽑히도록 일을 하셨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내 나는 몸으로 돌아오셨네.

허리에 파스가 떨어질 날 없었고

부앙 뜬 어깨는 피멍이었네.


하루 한날도 편히 못 자며

고단한 평생을 어찌 사셨누.



내가 어릴 적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고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는 나를 자랑하셨나니.



나는 아버지를 단 한 번도 업어드린 적이 없지만

아버지는 개울물을 건널 때도 나를 업고 가셨다.


나는 아버지를 단 한 번도 안아드린 적이 없지만

늘 나를 안아 주셨다.


꽃을 좋아하셨지만

꽃다발을 사 오면 돈 쓴다고 나무라셨다.


맛있는 걸 사드리면

낭비라고 역정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잊고 살지만

아버지는 늘 나를 그리워했다.

천천히 나오시라 하면 늘 한참 전에 나와서 기다리셨다.


아버지 어깨에 머리칼이 쌓여간다.

저 머리칼이 다 빠지고 나면

떠나시려나.



만약에

정말 만약에

다음생이 있는 거라면

내가 아버지의 아버지로 다시 태어나

노을 비낀 석양을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아버지를 업어드릴게.



아버지,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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