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란

by 박철
요리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요리 먹는 걸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나는 글을 읽는 것보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꼭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처음으로 내 글을 평가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시조시인이셨던(이후 단국대 교수가 되신) 국어 선생님께서 숙제로 제출한 내 시를 보시고는 무척 재능이 있다며 격려를 해주시고 나를 개인적으로 시화전에도 초대를 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 감정이 글이 되면 시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특별히 글쓰기를 전공해야겠다거나 깊이 있게 글쓰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나의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기보다는 나를 정리하기 위함이다.


가끔씩 우리 딸들이 내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빠는 글을 그렇게 자주 쓰면서 왜 아직도 맞춤법이 많이 틀려?”


그럼 내가 말한다.


“나는 한글이 너무 어려워, 그런데 좀 틀리면 어때. “


나는 낚시를 무척 좋아한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낚싯대 하나 들고 하루 종일 깊은 산속 계곡에 홀로 들어가는 걸 즐긴다.

그렇다고 내게 특별한 낚시 기술이 있거나 물고기 요리를 즐기는 것도 아니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물이 재잘대는 소리,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 바람이 계곡을 핥으며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행복하다.

내가 한나절 낚시를 하고 빈 바구니로 들어가면 아내는 내게 묻는다.


“왜 물고기가 없어?”


물고기가 아니라 나는 낚시가 좋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방을 정리하는 것과 같다.


나는 방이나 차 안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있어야 할 것은 자기 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일종의 정리 벽 같은 것이다.


가끔 아주 드물지만 설거지를 하는 이유는 특별히 아내를 돕고 싶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깨끗이 정리된 설거지통을 보면 내 마음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저런 일들에 머릿속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마치 머릿속이 반찬그릇과 냄비들이 널브러져 있는 설거지 통 같다고나 할까.

그러면 나는 피곤하고 어지러움을 느낀다.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갖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그때 모든 것을 멈추고 글을 쓴다.

머릿속에 너저분한 쓰레기들을 한 놈씩 끌어다 놓고 분리수거를 한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슬프고 억울하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을 때 한참을 실컷 울고 나면 밥숟갈 뜰 생각이 나는 것 같이.


내가 글쓰기를 많이 하니까 주위에서는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줄 알지만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이다.

만약 작심하고 책을 읽는 경우라면 대부분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책 인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남의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삶을 굳이 내가 들여다볼 필요야.

차라리 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더 즐긴다.

누군가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몇 시간씩이나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내 글이 누군가의 위로나 감동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내 글은 먹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만들기 위한 요리다.

누군가 맛있게 먹지 않아도 만들어지는 그 순간 목적은 달성되었다.

나는 가끔 강연 요청을 받지만 솔직히 좀 불편하다.

요청한 분의 입장을 생각해서 나서지만 나의 생각이나 견해를 누군가에게 주입하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굳이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내게 없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 남들이 짜놓은 프로그램, 남들이 다 찍은 그 장소에서 사진 찍고 싶지 않다.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은 프랑스의 어느 마을이다.

숲이 우거지고 소란스러운 관광객들이 없으며 알려진 관광지도 아닌 커다란 전나무 숲길을 걸어보고 싶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그랜드 캐년도 스위스의 몽블랑도 별 흥미를 못 느낀다.


몇 해 전 하와이를 다녀온 뒤로는 더욱 해외여행에 흥미를 잃었다.

와이키키 해변도 유명하다는 새우 요리도 별로였으니.

나는 글을 잘 쓰기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쓴다.

잘 써야 할 이유도 맞춤법이 딱 떨어져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나에게 작가라는 표현은 감사하지만 글쎄...


나에게 글쓰기란, 반찬 국물이 튀고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찾아갈 수 있는 동네 친구 같은 뭐 그런 거.


나에게 글쓰기란, 손님이 아니라 친구.


내 글의 상당수는 별로일 때가 많다.

어차피 먹으려고 잡는 물고기가 아니니까.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글쓰기는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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