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겨울에도 봄이 올까요?
아내의 격려와 남편의 성공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실직인 상태로 거의 한 달 가까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부부에게는 유치원 다니던 큰딸과 이제 돌이 지난 젖먹이 둘째 딸이 있었다.
변두리 작은 전셋집에 살던 우리는 딱히 모아둔 돈이 없다 보니 생활비가 금방 바닥나고 말았다.
당시 아내는 내게 생활비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저 어느 정도의 여윳돈이 아내에게 있는 줄 알았다.
여기저기 입사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곤 했지만 딱히 좋은 결과가 없이 시간이 갔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딱히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다닌 나에게 쉼은 편안함이 아니라 낯섦이었다.
그저 전 직장 후배들이 부르면 나가서 소주나 한잔하고 오는 정도였다.
집을 나설 때마다 아내에게 만원을 받아 소줏값, 담배 값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돈이 없으니 누구를 만나기도 불편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는 인형에 눈 붙이기, 사탕 싸기 등 부업거리들을 집으로 잔뜩 가지고 들어왔다.
하루 종일 해도 불과 몇천 원이 안 되는 노동에도 아내는 콧노래를 불렀다.
결혼 전 젊은 시절 서울 강남 서초동에서 회사를 다니던 아내에게 참 보잘것없는 일거리였다.
그러나 아이 둘을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몇 푼 된다고 그런 걸 해, 골병만 들지 않아?”
“이게 어딘데요, 애들 분유값은 돼요~”
다행히 몇 개월 후 시작했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아내는 더 이상 부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5년쯤 지난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그때 집에 쌀이 떨어졌었어요.”
“그랬어? 그럼 나한테 왜 말을 안 했어?”
“당신한테 말하면 뭐해요, 당신도 방법이 없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동생한테 500만 원을 빌려서 살았어요.”
“그래? 그럼 처제한테 빌린 돈은 어떻게 했어?”
“다 갚았어요.”
“어떻게?”
“당신 일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다 갚았어요.”
집에 쌀이 떨어진다는 말이 무슨 625 때나 듣던 말인 줄 알았는데 우리 집이 그랬다니 아내에게 무척 고맙고 미안했다.
보통의 여자라면 생활비가 떨어졌다고 남편에게 푸념을 하거나 혹은 돈을 벌어오라고 다그쳤을 만 도한데 우리 아내는 돈 없다는 말도, 걱정 섞인 표정도 내게 하지 않았다.
사실 당시 내가 직장을 그만둘 때 나는 아내에게 물었었다.
“여보, 나 이러저러해서 이따위 직장 때려치우고 싶어.”
“그런 직장 당장 그만둬요. 당신 그동안 수고 했어요.”
아내는 두말도 없이 동의를 해 줬다.
딱히 모아둔 돈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동의를 해줬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겁이 없는 건지, 용기가 많은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그러나 가장으로서 실직한 하루, 하루는 지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이었다.
늘 밤마다 다음날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아내는 한 달 넘게 직장을 못 잡는 내게 단 한 번도 보채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작지만 사업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부자 소리를 듣는 자산가가 되었다.
만약 그때 아내의 격려와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돈 몇 푼에 팔려 다니는 인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고 보니 아내는 남편인 나보다 100배는 강하고 현명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예전 가전제품 광고 문구 중에 이런 문구가 생각난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역사, 사회, 문화 속에서 남편의 성공이나 성장을 도운 아내들의 헌신, 지혜, 내조를 조명하는 이야기는 많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아내 메리 토드 링컨,
링컨의 아내는 지적인 여성으로, 남편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맥을 연결하고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에는 여성이 정치에 관여하기 어려웠지만, 그녀는 배후에서 큰 역할을 했다.
넬슨 만델라의 부인 위니 만델라.
넬슨 만델라가 27년간 수감생활을 할 때, 위니는 남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인권 운동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만델라는 석방 후에도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김구 선생의 부인 최준례.
백범 김구 선생이 항일운동을 하며 숱한 망명과 투쟁을 이어가는 동안, 부인 최준례 여사는 굶주림과 위험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며 남편의 뜻을 받들었다. 공식적인 기록은 적지만, 백범의 자서전에서 부인의 고생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약용의 아내 홍 씨.
실학자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며 많은 저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족, 특히 아내의 든든한 내조가 있었다. 당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지 방식은 가정을 안정적으로 지키며 남편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중년 이후의 자살률이 가장 높고, 특히 남성의 자살률이 여자의 두 배가 넘는다.
남자는 강해 보이지만 위기 앞에 늘 약하다.
그러나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 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여자는 약하지만 아내는 강하다.
여리 여리해 보이지만 그 속에 큰 태산을 품고 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여자는 남자의 아내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이며 가장 위대한 조언자
부디 조금은 부족하고 때로는 실수투성이인 남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하여 세상의 리더로 우뚝 서게 하는 아내가 되시기를 기도드린다.
이 글을 통하여 쌀이 떨어져 심장도 “쿵”하고 떨어졌을 아내에게 다시 한번 미안함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