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핵개인의 가벼움

(2) 게오르그 짐멜

by 정상권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트렸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처음을 이렇게 시작한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우리가 영원히 지금 이 삶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 삶을 긍정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정신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설파를 위해 도입되었다. 쿤데라는 ‘지구상에서 인간의 삶이란 반복될지 아니면 이대로 끝날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순간순간은 다 한 번뿐이어서 절대로 다시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므로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의미만을 궁극적으로는 가질 수밖에 없다.’라는 식의 생각을 펼치며 소설을 완성한다. <무경험의 행성>이 원제였던 이 소설은 우리는 이전 것을 경험할 수가 없고, 미래에 다시 어떤 경험을 반복할 수도 없고, 항상 무경험의 상태에서 어떤 일을 시작하고 모든 것을 경험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게 한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무엇이 도대체 옳은 결정이고 무엇이 과연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어떤 선택을 내려야 내가 행복해질지 그런 것에 대해서 결코 알 수가 없다. 일상의 모든 선택들의 결과를 알 수가 없고 독자적으로 미지의 상태 속에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무거움을 우린 회의할 수밖에 없다. 필연성, 진중함, 이데올로기, 궁극적인 삶의 목표, 운명론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고, 한 번 사는 이 인생에서 모든 것들은 가볍고 일종의 놀이, 순간을 만끽하고 몰입하라는 결론을 쿤데라는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프라하의 봄의 시대를 살아가던 체코슬라바키아인 쿤데라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작용하던 사회정치적인 힘의 무거움, 거시적임에 대해 부정했다. 쿤데라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정치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의 소설은 철저히 그러한 진지함과 키치(Kitsch)를 부정하였다. 일상을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미시적이고 가벼운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오르그 지멜의 사상은 쿤데라와 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비스마르크 통치 시기나 프라하의 봄을 지나 21세기에도 그들의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겠는가?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더 이상 압축성장의 형태로 경제발전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저성장 시대에서 개인은 치열하게 일하기보다는 편하게 노동하고자 하며, 열정을 다 바칠만한 어떠한 이념이나 사회개혁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쿤데라의 시대에는 정치와 공권력이 개인의 삶을 무겁게 짓눌렀다면, 지금은 정치가 개인의 삶에 중대한 개입이 있는 시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정착은 삼권분립과 언론, 선거 등의 견제방식을 통해 독재자의 폭정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게 되었다. 우리는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적 안전장치를 믿고 개인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나름의 축복의 시대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안정화 속에서 21세기 선진국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은 바로 ‘핵개인’이다. 데이터분석가 송길영은 자신의 저서 <시대예보-핵개인의 시대>(2023)에서 ‘핵개인(nuclear individual)’이라는 말을 새로운 사회구성원적 단위로 정의했다. 이는 거시적인 담론과 사회단위적 사고(학교, 직장, 가족 등)가 아니라 아주 미시적이고 독자적인 형태로 자신의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학자 J. P. 머독은 1950년대 미국의 가족 구성원이 3세대 가족에서 2세대 가족으로 변화하면서 ‘핵가족(nuclear family)’라는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가족단위를 제시한다. 한국은 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핵가족화를 함께 겪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1인가구 비율은 2000년 15.5%에 비하면 2022년은 34.5%로 꾸준히 증가하였다. 이러한 1인가구와 핵가족으로부터의 쪼개짐이 가능해진 이유는 바로 기술 혁신과 플랫폼 발달의 영향 때문이다. 과거에는 핵가족 내에서 역할이 분명하게 존재하였다. 돈을 벌며 직업활동을 하는 가장은 오직 돈을 버는 일만 했으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는 가사노동들은 철저히 전업주부의 몫으로 분리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직업참여 증가로 점차 가사분담과 맞벌이가 확대되었으며, 가사노동시간의 단축을 가능케 하는 기술과 플랫폼들도 차례로 발달하게 된다. 이러한 기술 발달은 대학생과 2030의 자취생활의 질도 향상했다. 음식 배달앱으로 높은 퀄리티의 외식을 집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밀키트와 레토르트 식품은 요리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었다. 요리와 마트 장보기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편리함은 가족생활을 해야 할 필요성을 약화시켰고 1인가구의 자율성이라는 매력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1인가구가 뉴노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1인 가구는 핵가족으로부터의 물리적인 독립의 모습이 되었는데 혼자 사는 것과 핵개인으로 사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타자에 대한 의존도 감소, 개인의 주체적인 의사결정에 있다. 즉 1인 가구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족구성원의 영향을 덜 받게 되면서 좀 더 고유성을 가지게 되며 자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기존의 4인 가족 구성원 안에서도 점차 핵개인적 사고를 하는 사람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본다. 1인가구의 비율은 점차 늘어날 것이고, 혼자 사는 것이 같이 사는 것보다 더 평범해지면서 우리는 좀 더 독립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를 교육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핵가족 안에 있더라도 핵개인으로 쪼개질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21세기 정치적 경제적 안정화와 핵개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시적 담론과 논쟁, 목표를 해리시켰고, 아주 작은 단위로서의 행위와 의사결정을 일컫는 일상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형식으로 발전되었다. 매슬로 욕구 피라미드 내 하위욕구들은 이미 충족이 완료된 21세기 선진국 시민들은 이제 더 높은 행복추구와 자아실현을 살피게 되었다. 핵개인은 자신이 기업이나 국가, 가족, 학교, 모임, 종교의 구성원으로서 ‘꽤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만족하면서 생활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간주한다. 그렇다면 핵개인의 주체적인 의사결정과 일상을 가볍게 놀이로 간주한 지멜과 쿤데라의 생각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자유를 보장하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 정부나 특정 사회집단이 제약을 한다는 것은 그 제약에 협조한 만큼 책임의 주체는 이동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자유를 제약하여 생긴 문제들에 대해 정부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기본소득 형태의 지역화폐를 제공했다. 그러나 무한한 자유는 스스로 그 책임을 온전하게 져야 한다는 측면 때문에 합리적인 수준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제약할 수 있게 된다. 핵가족의 시대와 달리 핵개인은 스스로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주체임과 동시에 책임의 주체이기도 하다. 즉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는 책임은 필연적으로 핵가족 구성원 내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그 핵가족 전체가 지게 된다. 하지만, 핵개인은 그러한 책임을 개인에게 한정시키면서 무거운 짐을 덜게 하며, 자신이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선택을 하게 된다. 거대한 사업과 투자를 통해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강한 부담은 없다. 그저 개인의 몸 하나를 건사하고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자신이 즐거워하는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만 갖추면 된다. ‘소확행’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21세기 핵개인의 일상은 결혼을 하기 위해, 효도하기 위해, 혹은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 제물이 아니라 그날그날 행복하기 위한 가벼운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아침운동과 러닝을 하고 샤워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그 행위가 나에게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일 뿐이며, 결코 거시적인 목표나 이유 때문이 아니다. 과제를 잘 써서 좋은 학점을 받고, 좋은 학점을 받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자 하는 외적 동기는 보상이 오기까지 너무나도 긴 시간이 소요된다. 거시적인 이유로 모든 삶의 행위에 의미부여를 한다면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는 그 과정들이 다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불행하며, 목표를 이루고 났을 때도 그 목표는 다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또 하나의 필요조건으로서 기능하게 되면서 우리는 영원히 현재를 미래를 위한 제물로 사용하게 되기에 불행하다. 과제를 잘 쓰려는 마음은 기능적인 이유가 아니라 이 일을 했을 때 몰입의 즐거움과 성취와 보람과 같은 즉각적인 내적 동기에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일상은 가벼운 놀이가 된다.



핵개인들의 일상은 서로 각자의 고유함을 띠어야 한다. 모방이나 유행에 따라가더라도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핵개인이 된다. 다시 말해서, 핵개인은 모든 개인에 대해 동일한 존재로 간주하여 일반화하려는 양적 개인주의와 대립하며, 개인의 고유함과 개성을 중시하는 질적 개인주의를 갖춘 존재다. 오늘날의 한국은 이러한 핵개인들의 개성이 존중받기에 유리한 환경이지만 몰개성에 빠질 수 있다는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1위이며, 각종 변화에 대한 시류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국가다. 왜냐하면 한국은 압축성장 과정에서 세계의 것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융성시켰을 때 국가가 발전했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서울우유에서 매일우유로 갈아타는 것은 망설이지만, 포털사이트의 시작페이지를 다음에서 네이버, 네이버에서 구글로 옮기는 것에 대한 관성은 약하다. 텔레비전 지상파에 대한 수요는 모두 유튜브와 인터넷방송으로 이동했다. 즉, 좀 더 기술친화적인 플랫폼으로의 이사가 쉽고, 옛것에 대한 향수나 미련이 크지 않는 등 플랫폼의 가치를 보다 가볍고 경쾌한 것으로 간주한다. 보는 콘텐츠는 다르더라도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유튜브 플랫폼에서 소비하고 있다. 2030은 먹방과 게임방송을 보며, 어르신들은 임영웅의 공연과 정치시사뉴스를 챙겨본다. 유연한 플랫폼 간의 이동은 건전한 경쟁을 유발하고 수용자 친화적인 콘텐츠를 양산하게 된다. 하지만 과도한 쏠림 현상에 대한 문제점도 존재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종이책을 읽지 않게 되었고, 하나의 유행은 모든 사람들이 마라탕과 탕후루를 먹게 하는 몰개성을 낳았다. 유행에 민감한 이러한 한국인의 특질은 다원화를 불능케 하고 수용자들을 개성적인 핵개인이라기보다는 숫자로 기록되는 양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수렁에 빠진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특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충분히 개인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교내 두발규제는 상당 부분 완화되었으며, 교복 자율화, 청소년 화장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전보다도 음악,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들 자체의 양적 증가가 다양성 증가로 이어짐에 따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BTS나 어떤 특정한 가수와 소속사에게 독과점이나 수익창출이 유리하게끔 동원하는 일도 전혀 없다 보니, 수용자들은 철저히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대로 자신의 개성에 맞게 문화를 소비하고 심지어는 2차 문화를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튀는 것을 경계하고, 늘 표준상태에 속해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강박이 있었다면, 오늘날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있다는 면에서 발전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단순노동과 평균적인 행위들을 기계와 AI에게 맡기게 됨에 따라, 개인에게 기대하는 바는 더욱 창의적이고 다원적인 생각들이 되면서 확대될 것이다. 그들이 개성을 발휘하는 것 또한 일종의 행복해지기 위한 그들 각자의 미시적인 방법론이며 그것은 너무나 가볍고 경쾌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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