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우리 뇌가 수많은 신경회로들이 경쟁하는 오케스트라이고, 의식이 그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의식 덕분에 우리는 배고픔과 공부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고,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만약 이 지휘자가 갑자기 이런 심오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 혹시 내가 드럼 연주자였다면 더 행복했을까…?"
오늘 우리는 바로 이 지휘자, 즉 의식이 조율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흥미롭고도 때로는 뒷목 잡게 괴로운 이야기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볼까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음악을 조율하고, 연주자들을 이끌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휘자가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자신이 그저 음악을 조율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나라는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죠. 마치 거울을 보고 "어라? 저 사람이 나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뇌 속 신경회로들의 복잡한 신호들을 통합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던 의식이, 어느 순간 나라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고, 듣고 있고, 생각하고 있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하는 존재로군!" 이렇게 의식이 생겨나는 순간,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근본적이고도 어지러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할수록 우리는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의식 그 자체는 사실 어떤 고정된 무엇이 아니거든요. 어떤 직업, 어떤 성별, 어떤 국적, 어떤 성격 같은 특정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치 새로 산 스마트폰인데 기본 앱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의식은 당황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공허함으로 다가올 때, 의식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빈 도화지인데, 너무나 비어 있어서 뭘 그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의식은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엇인가가 되려고 발버둥 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와 문화 속에서 수많은 정보와 기대를 접하게 됩니다. "너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 "너는 성공해야 해",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같은 메시지들 말입니다. 의식은 이러한 외부의 기대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스스로에게 '이름표'를 붙이려 합니다. '나는 학생이야', '나는 회사원이야', '나는 효심 깊은 아들이야', '나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야' 등등.
이렇게 의식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되기 위한 정체성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남과의 비교와 경쟁입니다. (비교 시작 불행 시작입니다)
지휘자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들을 둘러본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저 지휘자는 나보다 더 유명하네?", "저 지휘자는 억대 출연료를 받는다고?", "저 지휘자는 연주회마다 기립박수를 받네?" 이런 비교가 시작되면 끝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더 나은 무엇이 되기 위해 피 터지게 경쟁하게 되지요.
우리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멋진 사람이어야 해', '나는 성공해야 해', '나는 행복해야 해' 같은 정체성을 가지려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남들의 화려한 삶을 보며 초라함을 느끼고, 친구의 성과를 보며 질투심을 느끼고,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애씁니다.
이러한 비교와 경쟁은 우리 삶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가져다줍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반복됩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가 되려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또 다른 목표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끝없는 굴레 속에서 우리는 지쳐가고, 진정한 만족과 평화를 찾기 어려워집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말이죠.
그렇다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다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돌아가 봅시다. 지휘자의 본질적인 역할은 음악을 조율하는 것이지, '가장 유명한 지휘자'나 '가장 부유한 지휘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휘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굳이 남과 비교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우리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굳이 고정된 무엇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이고, 삶의 매 순간을 경험하는 '과정' 그 자체거든요. '나는 학생이다'라는 정체성이 졸업 후에는 사라지고, '나는 직장인이다'라는 정체성도 퇴직 후에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은 여전히 당신입니다!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책임하게 산다'거나 '목표 없이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틀에 갇히지 않고, 매 순간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삶의 작은 순간들에서 소박한 기쁨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마치 뷔페에서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먹는 자유로움처럼 말입니다.(이것이 자유입니다)
우리 뇌는 여전히 오케스트라처럼 바쁘게 움직일 겁니다. 신경회로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경쟁하겠지요. 그리고 의식은 여전히 그 모든 것을 조율하는 지휘자 역할을 할 겁니다. 하지만 이제 이 지휘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조율하는 음악에 집중하고,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뿐이지요.
정체성을 가지지 않아도 인생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체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남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나라는 존재가 지금 이 순간 느끼고 경험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괴로움 없는 삶을 향한 가장 현명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의 뇌 오케스트라는 오늘도 멋진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곡은 무엇이 될지, 당신의 의식이 지휘하는 대로 따라가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