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도정신건강의학과 3

강박증, 뇌 안의 전쟁

by 은도정신과

스물둘, 강수빈은 김형준 원장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유리 인형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눈빛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헤매는 듯했고, 얇게 다문 입술은 옅은 자주색을 띠고 있었다. 손에는 낡은 에코백을 꽉 쥐고 있었는데, 너덜너덜해진 가방끈이 그녀의 불안정한 내면을 대변하는 듯했다. 회색빛의 늘어난 면 티셔츠에 무릎 부분이 불룩 튀어나온 청바지. 대학생이지만 아직 교복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앳된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불규칙한 생활 때문인지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김 원장의 정신과 문턱을 넘기 전까지 수많은 밤을 불안과 씨름하며 보냈다. 샤워 시간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했고, 학교에 늦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강박적인 행동을 훈육으로 고치려 했던 부모님의 강압적인 태도는 그녀에게 정신과 방문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마저 압도할 만큼 고통이 커져 버린 것이다. 낡은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오는 물처럼, 불안은 끊임없이 그녀의 삶을 잠식해 들어갔다.

김 원장은 그녀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을 들으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가방을 여러 번 확인하고, 숙제를 잊을까 봐 메모를 반복적으로 하고, 손을 자주 씻으셔서 상처까지 생겼다고요? “ 김 원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중학생 때는 전기 코드를 수십 번 확인해야 외출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강박증에다 미루는 버릇도 생겼고, 간신히 대학에 왔지만 평소에는 공부를 못 하다 시험 직전에 하고 과제도 마감 직전에 겨우 제출한다는 거군요.”

강수빈은 언제나 그랬다. 과제가 주어지면, 갑자기 좀비가 된 듯, 바로 착수하지 못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어째서인지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감 직전, 벼랑 끝에 몰린 사람처럼 허둥지둥 매달려 간신히 완성하고 나면, 대체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짐작할 수 없었다. 게을러서 그런 걸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또 다른 모습의 그녀는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성실함에 가까운 타입이었다.

“좀 더 나은 성과를 거두어서 교수님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번번이 일을 지연시켜서 나쁜 이미지만 더 만드는 것 같아요. 도대체 제가 왜 이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김형준 원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볼펜을 천천히 돌렸다. 볼펜 끝이 허공에 작은 원을 그렸다. “도스토옙스키의 단편 소설 중에 ‘약한 마음’이라는 게 있습니다. 주인공은 가난한 공무원이죠. 상사에게서 3주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문서 작업을 지시받았어요. 하지만 그는 일을 시작하지 못합니다. 대신 여자친구에게 청혼하고 선물을 삽니다. 일을 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계속 딴짓을 하죠. 며칠 밤을 새우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안에 떨며 제대로 일도 못 합니다. 그러다 불안감에 실신하기도 하고, 일을 못 해서 군대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결국 정신병원으로 가는 비극으로 끝나죠.”

원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강수빈을 응시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계속 미루고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본인도 힘들고 주변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많은 분들이 ‘약한 마음’의 주인공과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죠. 시험이 코앞인데 공부는 뒷전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거나 넷플릭스에 빠져 지냅니다. 수업에 가야 하는데 약간 늦었다는 이유로 아예 수업을 제치고 잠을 자거나 다른 일을 합니다. 논문을 쓰지 못하고 교수님과의 면담을 계속 미루는 경우도 있고요. 중요한 미팅에 충분히 미리 갈 수 있는데도, 시간에 임박해서야 도착하곤 합니다. 실력이 있음에도 성적은 낮게 나오고, 직장에서는 저평가되거나 심지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강수빈은 놀란 표정으로 숨을 들이켰다. “정말이에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많다니 놀랐어요. 제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군요.” 그녀의 눈빛에 묘한 안도감이 스쳤다.

“네, 그렇습니다.”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성격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게 만들죠. 이 두 가지가 뇌 안에서 충돌을 일으켜,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겁니다. 뇌 안의 전쟁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거죠. 그래서 그 힘든 마음을 완화시키려고 오히려 딴짓을 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요.” 강수빈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힘들면서도 딴짓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이해할 수 없는 해방감이 섞여 있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문이 열리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김형준 원장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히 말했다. “네, 성격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바꾸기는 어렵죠. 그래도 자신의 상태를 잘 인지하고, 약의 도움을 받는다면, 조금씩 나아져서 나중에는 훨씬 좋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수빈 님,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사셨는데, 진작에 정신과에 오고 싶지는 않으셨나요?”

강수빈은 눈빛이 흔들렸다. “어릴 때부터 오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못 가게 하셨어요. 훈육으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김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분들이 강박증을 의지의 문제나 성격적인 문제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강박증은 뇌 하드웨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고혈압이나 당뇨병도 신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뇌 기능의 특정 부분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나는 현상이죠. 그래서 교육이나 의지로 고칠 수 없어요. 부모님도 그런 사실을 아셨다면 정신과에 데리고 가셨을 거예요.”

강수빈은 자신의 상태에 뭔가 뇌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불안했던 마음에 안도감이 찾아왔고, 희미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빛이 그녀의 내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터널 끝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한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던 기묘한 전쟁의 이유를 알게 되자, 그동안 그녀를 짓눌렀던 무거운 불안감은 뿌리 뽑힌 잡초처럼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전에는 미지의 땅을 홀로 헤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이전글우리의 마음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