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저항력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께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우울증의 원인이 분명히 있는데, 약만 먹는다고 해서 우울증이 나을까요?"라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실연, 실직, 감당하기 힘든 상사, 폭력적인 아버지, 배우자의 외도 등 명확한 외부 사건을 우울증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그리고 그 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만 우울증이 근본적으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울증의 원인은 그렇게 한 가지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우울증이라는 병이 생깁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유전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특정 유전자가 유방암의 발병률을 높이는 것처럼, 우울증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사람의 기분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는 수십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이 유전자들에 문제가 생기면, 기분이 쉽게 저하되거나 스트레스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둘째, 성장 환경에 따른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감정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셋째, 위에서 언급된 스트레스 역시 우울증의 매우 중요한 원인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스트레스는 우리의 정신적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울증이 발병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유전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성장 환경이나 스트레스 요인이 더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 원인만으로 우울증이 생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 유전적으로 스트레스에 다소 취약한 상태에 있던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특정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만났을 때 우울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약물치료나 정신치료가 지긋지긋한 상사나 바람피운 배우자 같은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을 직접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치료는 우리의 기분 조절 기능을 회복시켜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보다 건강하게 바꿔줄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스트레스나 인생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울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