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책 도움이 될까?

안 봐도 그만

by 은도정신과

서점에 가면 심리학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MBTI부터 시작해 각종 성격 유형 이론, 관계 심리학, 자존감을 높이는 법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심리학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매일 부딪히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마음,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비밀 지도' 같은 책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애타게 찾는 그런 완벽한 책은,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의과대학생 시절, 정신과 실습하며 케이스 컨퍼런스(case conference)에 참석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환자의 삶과 심리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사람의 유년기 경험부터 현재의 문제까지, 그 복잡다단한 삶의 이야기가 정신분석이라는 틀 안에서 논리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보며 저는 경이로움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한 사람의 마음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정신분석을 깊이 공부하면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하는 섣부른 기대를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전공의가 되자, 그 기대는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막상 제가 케이스 컨퍼런스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 사람의 마음을 이론의 틀에 맞춰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인지 절감했습니다. 정신치료의 교과서로 불리는 가바드(Gabbard)라는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제 눈앞의 환자에게 딱 들어맞는 완벽한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책 속의 이론은 명쾌했지만, 제 환자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생생한 존재였습니다.


발표 시간은 다가오는데 내용은 정리가 되지 않아 초조하게 시간만 흘려보내던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이 아니라, 환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렇게 이론의 틀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삶을 따라가 보기 시작하자,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발표 내용이 저절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론은 참고자료일 뿐, 답은 환자 자신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성격은 저마다 고유한 지문과도 같습니다. 세상에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를 설명하는 훌륭한 책들이 많지만, 세상 모든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전 세계 인구가 82억 명이라면 82억 개의 각기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바로 '당신'의 마음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단 한 권의 책은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마음의 상당 부분은 언어라는 틀로 온전히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30만 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정교한 언어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 마음속에는 분명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형성된, 언어 이전의 깊은 영역이 존재합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 몸이 기억하는 느낌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아름다운 장미나 감동적인 음악을 언어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 어떤 미사여구도 직접 보고 듣는 경험의 감동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아는 여정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궁금할 때, 책을 뒤적이는 것에서 잠시 멈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시간에 고요히 자기 자신이나 상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외부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내 안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은도정신건강의학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