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상의 국가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나라에서 최고의 가치는 ‘달리기’입니다. 달리기를 잘하면 부와 명예를 얻고 모두에게 존중받지만, 달리기를 못하면 가난하고 무시당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달리기 조기 교육에 매달리고, 조금이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나라가 과연 정상적으로 보이십니까? 운동 신경은 상당 부분 타고나는 것인데, 교육만으로 얼마나 기록이 좋아질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달리기’라는 단어를 ‘공부’로 바꾸면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한 지인과의 대화는 이러한 현실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인의 초등학교 1학년 딸이 공부할 때 좀처럼 집중을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옆에서 구구단이나 영어 단어를 가르치려 해도 아이는 계속 딴짓을 하고,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얌전히 있을 때 친구들을 놀리기도 한다며 ‘ADHD가 아닐까’ 하고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 나이 아이들에게는 아직 신경계가 미성숙하여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모습이고, ADHD를 진단하기에도 너무 이른 나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다른데, 어쩌면 공부에 흥미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아이가 ‘공부 체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애써 돌려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인은 단호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세상은 공부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어떻게 해서든 공부를 잘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녀는 이미 소아 정신과 예약까지 마쳤고, 필요하다면 약도 먹일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소아 정신과 역시 예약이 꽉 차 있어 몇 달을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와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깊은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지인 역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듯했지만, “모두가 뛰고 있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마치 앞다투어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떼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정말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 이 무한 경쟁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경쟁에서 앞서가는 사람도, 뒤처지는 사람도 모두가 불행한 세상입니다. 저는 그날 하루 내내 안타까움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경쟁의 대열에 세우려는 지인에 대한 안타까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르는 그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이런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바꿀 방법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문명이 인간을 사악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루소의 통찰이 정말 진실로 생각되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