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의 맹점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에서, 아들을 '잘 안다'고 말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 장면이 우리 삶의 한 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습니다. 문득 나를 돌아보니,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안다고 단정 지으며 오만하게 굴어온 건 아니었을까, 친밀함이라는 그림자밑에 착각이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특히 가족이라는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는 착각이 더 잘 생깁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때, 그 시선은 정말로 '지금 여기의 그 사람'을 응시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내 마음속에 오랜 시간 쌓아온, 어쩌면 현실과 어긋난 이상적 이미지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종종 이 이미지를 바탕으로 갖은 기대와 예측을 덧붙입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그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배신감이나 상처를 쉽게 느끼죠. 잘 안다고 생각하는 가족이기에 더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그 순간, 실제로는 사랑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세계가 흔들리는 불안감'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관계가 시작되는 출발선이 아닐까요. '모름'은 무관심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상대를 쉽게 규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해하려 애쓰겠다는, 존중과 호기심의 또 다른 이름이죠.
누군가를 '영원히 탐험해야 할 신비한 세계'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작은 용기를 얻습니다. 가족이라는 두터운 껍질을 벗고 나면, 그 안에는 불완전하고 약하며 가끔은 낯설게만 느껴지는 '한 사람'의 진짜 얼굴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공간에서 TV를 보고 같은 밥을 먹지만, 사실 속으로는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는 저마다의 깊고 고독한 우주를 품고 살아갑니다. 내 마음속 감춰진 별들을 아내도 모르고, 아내의 세계 또한 내가 다 안다고 할 수 없죠. 그저 서로에게 영원한 비밀로 남을 뿐입니다. 이 당연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속에는 말 못 할 평온이 스며듭니다. '아, 우리는 각기 다른 은하에서 온 낯선 존재들이기도 하구나.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인연으로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괜한 섭섭함이나 불필요한 기대도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그저 서로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고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해진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