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by 은도정신과

의료에 관한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습니다. 의학 기술이 미비했던 시절,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병원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진정으로 최상의 의료 단계에 이르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임종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마무리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진정한 의료의 진보란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병원에서 한 연로한 남자 환자를 만났습니다. 말기 암으로 고통받던 배우자를 떠나보낸 후 깊은 우울감을 호소하며 찾아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배우자는 심한 통증 속에서도 "제발 집에 보내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으로 그 소원을 들어드릴 수 없었고, 결국 병원에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눈물을 보이며 말했습니다. 배우자의 마지막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큰 한(恨)으로 남는다고.


의과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저는 의사라는 직업이 사람의 생명을 멋지게 살려내는 히어로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턴 생활을 시작하고 수많은 환자를 직접 마주하게 되면서, 병원이라는 곳이 생명을 살리는 곳이라기보다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연명(延命)만을 괴롭게 이어가는 장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밀려드는 환자들 속에서 인간적인 교류는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환자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통계 숫자처럼 느껴졌습니다. 환자 개개인의 삶의 질이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할 여유 자체가 없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나는 절대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을 농담처럼 자주 주고받았습니다. 그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회의감 때문에 저는 원래 목표였던 내과 전문의의 길을 포기하고 정신과 의사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그런 분위기는 단지 의료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한 개인의 삶의 마지막을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가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환자나 보호자들도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아름답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소망보다 더 앞섰던 것 같습니다. 병원의 분위기는 사회의 태도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았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더욱 발전하여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의사와 사회 모두 환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필요한 고통은 최소화하고, 그분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 눈물 흘리는 보호자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삶의 마무리는 의료진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사회 발전은 단순히 경제적인 성장이나 첨단 기술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은 도덕의 발전, 즉 한 개인의 삶의 가치와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회적 태도의 발전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료 서비스가 곧 이 희망적인 미래의 따뜻한 증거가 되어, 모두가 삶의 마지막까지 품격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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