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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May 10. 2024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요요가 온 이유.

"그 정도 덩치로는 절대 안 쓰러집니다."

저는 열등감이 많은 사람입니다. 가장 큰 열등감은 살찐 몸이죠. 어릴 적부터 통통했고 단 한 번도 젓가락처럼 말라본 적이 없습니다. 10년 전 너무 건강이 안 좋았습니다. 살이 찌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침마다 온몸이 부어서 거울을 보다가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큰맘 먹고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식단 조절과 운동만으로는 단시간에 살을 빼기 힘들 것 같아 한의원에 가서 다이어트 한약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한의사가 식단을 줬습니다. 한의사가 짜준 식단은 절대 실천 불가능했어요. 매 끼니 방울토마토 2개. 양상추 1쪽 뭐 이런 식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너무 충격적인 식단이라  제가 한의사에게 "이렇게 먹으면 쓰러지지 않나요?"라고 했더니 한의사는 "그 정도 덩치로는 절대 안 쓰러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허허허...


1일 1식.

한의사의 식단을 철저히 무시하고 1일 1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먹고 산답니까? 한약은 하루 3번, 밥은 점심만 먹었고 대신 먹고 싶은 걸로 배가 적당히 부를 정도로만 먹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맥주와 라면은 완전히 끊고 탄수화물은 거의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즐거우나 슬프나 맛있는 음식 먹는 걸로 풀던 사람이 1일 1식을 하려니 많이 힘들었어요.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2주 정도가 정말 힘들었어요. 하루 종일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남편과 아들 식사준비를 해주고 저는 보고만 있어야 하니 배가 고픈 것보다는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름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족들 식사준비를 할 때 너무 배가 고프면 젓가락으로 양념을 콕 찍어 맛만 보며 저 자신을 위로했죠.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는지 그렇게 맛만 살짝 느껴도 배고픔이 가라앉더라고요. 매일 러닝머신을 1시간 이상하고 배가 고프면 우엉차, 보이차. 녹차, 국화차, 히비스커스차, 허브차 등 각종 차를 마시며 버텼어요. 다이어트 후유증이 오면 안 되니까 영양제도 잘 챙겨 먹었고요.


"야, 이 돼지야! 어차피 다 아는 맛이야!"

당시 제가 가르치던 학생의 어머니도 다이어트 중이셨습니다. 저랑 비슷한 몸매였는데 상담차 만났더니 몰라볼 정도로 날씬해지셨더라고요.  저도 다이어트한다고 소문을 내고 있었던 터라 내가 살을 더 많이 빼야겠다는 경쟁의식이 생겨 매일 그 어머니의 카톡 대문사진을 확인하며 살이 얼마나 또 빠지신 건가 확인했죠.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머니의 카톡 프로필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어요.

"야, 이 돼지야! 어차피 다 아는 맛이야!".

맞습니다. 매일 먹는 음식은 어차피 먹어 봤던 음식들이고 맛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먹고 싶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이 저에게 큰 자극이 됐는지 다이어트가 덜 힘들어졌어요. 눈이 번쩍 뜨인 한마디였어죠.


제일 좋은 다이어트는 마음고생이라더니.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한 건 2015년 8월이었어요. 4개월간 약 7킬로그램 정도 살을 뺐습니다. 그 좋아하는 술약속도 한 번 잡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저에게 아주 큰일이 생겼습니다. 12월 12일 아빠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마음의 준비도 못하고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정신적 충격이 너무나 컸죠. 거의 매일 울면서 밥도 안 먹는 엄마를 달래다가 안되면 소리 지르고... 살가운 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힘들었기 때문에 엄마 한데 매일 친절하게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불면증이 생겼어요. 약 석 달 정도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집안일을 하고 엄마랑 아들을 챙기고 공부방 수업을 했는데 밤이 되면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잠이 안 와서 새벽에 혼자 일어나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싶어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어요. 상담을 하고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수면제를 먹어도 정확하게 4시간을 자고 나면 눈이 번쩍 떠졌어요. 거기다가 신경성 위염까지 생겨서 물도 소화가 안 되는 상황까지 오니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요. 허리 사이즈가 32인치에서 27인치까지 줄어들었으니까요. 몸무게로는 18 킬로그램을 뺐습니다. 다이어트 한약이고 1일 1 식이고 다 필요 없고 최고의 다이어트는 마음고생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입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고 요요가 왔어요.

7년 간 요요가 올까 봐 적게 먹고 틈틈이 운동도 하며 몸무게 유지를 했어요. 다들 대단하다고 놀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년 전 제가 어떤 친구로부터 굉장히 크게 뒤통수를 맞는 일을 겪었어요. 좋은 마음으로 그 친구의 일을 내일처럼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좋은 마음으로 도운 저를 실망시키는 말과 행동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살면서 이렇게 큰 배신감은 처음 느꼈어요. 뭐 그정도로 배신감까지 느끼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다 얘기할 수는 없지요.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들었습니다. 몇 달간 밤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안 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었나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고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1년을 관리도 안 하고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술을 마셨어요. 살은 점점 찌고 정신 건강은 피폐해졌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배신감이나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산다는 건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생활 루틴이 깨지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니까요.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남이 왜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해야 하나요? 그래봐야 나만 이렇게 망가지게 되는 거죠. 2년 동안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실컷 분노했으니 이젠 그만하려고 합니다. 분노를 용서의 감정으로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하고 방치했던 제 자신을 챙기려고 합니다. 좋은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게 복수가 아닐까요?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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