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白頭山)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우리나라 문헌에 기록된 것은 '고려사'라는 책에서다. 광종 10년에 "압록강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 바깥 쪽에서 살게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두산의 백이라는 한자가 흰 백'白'인 이유는 백두산 정상이 거의 사계절 동안 눈으로 덮혀 있고 산정상은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분출물 중에서 지름이 4mm 이상인 밝은 색을 띠는 부석(浮石)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년 8월 13일 4박 5일 일정으로 백두산에 다녀왔다. 내가 시민기자로 일하는 인터넷 언론사인 '리포액트' 대표 기자님께서 광복절을 백두산 천지에서 맞이하자는 기획을 하셨다. 후원회원 3명에게 여행경비 30만원씩을 지원해 주셨고 그 동안 시민기자로 일하느라 수고가 많았다며 내 경비 145만원을 전액 지원해 주셨다.
쉽게 얼굴을 내어주지 않은 천지
백두산은 날씨가 변덕스러워 천지를 볼 수 있는 맑은 날은 그리 많지 않다고한다. 맑게 개인 천지를 보는 것은 정말 행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백두산을 10번이나 다녀 왔지만 단 한번도 천지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8월 14일은 서파로 15일엔 북파로 두 번 천지에 올랐다. 14일은 서파로 올랐는데 완만한 나무 계단이 이어져있어 올라가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비가 계속 내리고 안개마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서파 꼭대기까지 1442개 계단을 오르며 어서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도했지만 결국에는 뽀얀 안개만 실컷 구경하고 내려와야만 했다.
"그럼 그렇지...나한테 그런 행운이 올리가 있겠어..."
내일은 비가 꼭 그쳐서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들었다.
< 서파 정상 1440번 째 계단 >
< 서파 정상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
< 비내리는 서파 정상 >
계속 내리는 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역시나 비가 내렸다. 백두산을 오르는 중국인들이 많아서 서둘러 가지 않으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우리 일행은 아침도 거른채 서둘러 천지로 출발했다. 북파로 가는 내내 비가 내리다가 잠깐 해가 나기를 반복해 오늘도 천지를 못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불안했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길을 작은 미니 버스를 나눠 타고 북파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북파에 가까워 갈 수록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드디어 천지를 볼 수 있겠다는 기쁨에 나는 북파로 올라가는 길을 동영상에 담으며 그날 그순간의 감격을 기록했다.
< 북파로 올라가는 꼬부랑 길을 신나서 촬영하는 나 >
광복절에 기적적으로 얼굴을 보여준 천지
북파에 도착하니 금새 하늘이 맑게 개였다. 우리 일행들은 아침밥도 거른채 일찍 출발했음에도 불구하도 북파에는 수많은 중국인들로 가득했다. 이제 조금만 올라가면 TV와 사진으로만 보던 천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첫 미팅할 때처럼 가슴은 콩닥콩닥 거리고 카메라를 든 손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긴 줄을 지나 드디어 천지를 마주했다. 천지는 마치 거울처럼 맑은 하늘을 비추었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게다가 그날은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을 천지에서 맞이하다니 너무나 비현실적이였다. 대표기자님은 천지에서 유투브 라이브 방송을 켜 천지의 생생한 모습을 중계했고 일행들은 사진 한 장이라도 더 남기기위해 열심히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천지의 예쁜 모습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데이터를 마구마구 쓰며 동영상과 사진을 신나게 전송했다.
< 광복절 북파에서 마주한 천지 동영상 >
광복절 백두산에서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백두산에 가기 전 나는 태극기를 가져가 볼까도 생각했다. 광복절백두산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어서 평생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안들때문에 불가능할거라고 해서 태극기 대신 자주독립기를 챙겨갔다. 그러나 막상 천지를 배경으로 자주독립기를 들고 사진 찍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가 없었기에 가이드분께 노래는 불러도 되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일행들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 했다.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글자기 새겨긴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백두산 천지를 본 기쁨과 서글픔이 교차하는 묘한 순간이었다.
< 광복절 백두산에서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 >
특별한 여행사 대표님을 소개합니다.
우리 일행을 인솔해 준 여행사는 '자연국제여행사'이다. 이 여행사의 대표님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다. 유우성씨는 당시 서울시 탈북자 담당 공무원이었는데 탈북자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며 국가정보원과 검찰청이 유우성씨를 기소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2심에서 국정원이 조작된 증거를 검찰에 제시하고 그대로 법정에 제출했으나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 것이 밝혀져 유우성씨는 항소심에 이어 최종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는 국정원 수사관들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거짓으로 오빠인 유우성씨가 간첩이라고 증언했다).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유우성씨는 억울한 옥살이와 함께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잃게 되었다. 여행사를 운영했으나 코로나로 쉬다가 작년 백두산 여행으로 다시 여행사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유우성씨 아버님께서 우리 일행들을 위해 북한에서 유명하다는 맥주(대동강맥주, 백학 흑맥주, 빙천 맥주)를 매일 가져다 주셔서 난생처음 북한 맥주를 맛보았던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맥주를 제일 좋아하는 나는 백두산에서 마셨던 북한 맥주들이 때때로 그리워진다. 백두산을 한 번 더 가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