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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May 16. 2024

나의 우상, 나의 영웅 윤동주

여고 시절 나의 문학 감성을 깨워준 시인 윤동주 생가 방문기

윤동주 평전

작년 8월 15일은 백두산에 올랐고 다음날인 16일에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방문했다. 백두산에 가기 전 일정표에 윤동주 생가 방문이 적힌 것을 보고 너무 흥분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백두산 보다는 윤동주 생가에 가는 것을 더 기대했다. 나는 여고 시절 시인 윤동주에게 푹 빠져 있었다. 윤동주의 시는 가슴 깊은 곳에 꽁꽁 묻어둔 나의 문학적 감성을 자극했다. 내가 살던 곳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라는 시골이다. 동네에 서점하나 없는 시골마을이라  영월군 읍내에 있는 서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윤동주 평전'이라는 책을 샀다.(내가 살던 정선은 행정구역은 정선이지만 생활권을 영월군이다.) 윤동주의 시를 읽다 보니 대체 윤동주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이 책 한 권을 반 친구들이 다 돌려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누렇게 빛바랜 보물 같은 책>

< 1993년 9월 3일. 당시 나는 책을 사면 꼭 구입 날짜를 적는 습관이 있었다.>


윤동주의 고향 북간도 명동

윤동주의 고향인 명동은 북간도 일대의 대표적인 한인 촌락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문화와 교육 운동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故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인 故 문재린 목사의 말에 의하면 당시 북간도로의 이민은 뚜렷한 세 가지의 동지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 단행했다고 한다. 척박하고 비싼 조선 땅을 팔아 기름진 땅을 많이 사서 좀 잘살아 보자, 집단으로 들어가 삶으로써 간도를 우리 땅으로 만들자,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바로 세울 인재를 기르자는 세 가지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민단은 미리 돈을 모아 선발대를 보내  땅을 사놓은 후 들어갔다고 한다. 공동의 부담으로 학전(學田)이라는 명목으로 땅을 따로 내어놓은 다음 각 집안의 땅을 분배해서 가졌다. 그 땅에서 나오는 수입을 교육기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학전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책들을 사다가 각 서재에 나눠 쌓아 놓고 학동들이 다니며 그 책으로 공부를 하게 했다.


 < 명동학교 옛 터에 만든 기념관: 명동학교는 명동서숙으로 시작되었다 >


 < 명동학교 설립자 김약연 선생 동상 >



윤동주 평생의 동반자 송몽규

송몽규는 윤동주와 석 달 간격으로 태어난 윤동주의 고종사촌이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고 일본 유학을 같이 갔다. 같은 사건, 같은 죄목으로 체포되고 후쿠시마 형무소에서 같이 옥살이를 하다가 19일 간격으로 사망했다. 내성적인 성격의 윤동주와 달리 송몽규는 활동적이었다고 한다. 윤동주와는 달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윤동주와 거의 모든 생애를 같이 한 형제 같은 인물이다. 故 문익환 목사의 말에 따르면 문익환은 윤동주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윤동주는 송몽규에게 열등감을 느꼈다고 한다. 윤동주는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고 송몽규는 연설도 잘하고 정치적인 리더십이 뛰어났다고 한다. 윤동주가 열등감을 느꼈을 정도이니 당시 송몽규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었는지를 알 수 있다.

故故 

< 송몽규의 옛 집, 아쉽게도 출입금지 >


대문 밖에서 바라본 윤동주 생가

우리가 윤동주 생가를 방문한 작년 8월에는 중국 당국이 내부 수리를 이유로 생가를 폐쇄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구적인 폐쇄 논란까지 있어 너무나 마음이 착잡했다. 생가 대문의 오른쪽에는 '중국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윤동주라는 민족 시인을 기리는 비석에 쓰인 '중국'이라는 글자 하나 빼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부에 매우 유감을 느꼈다. 대문 왼쪽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윤동주 생가는 다행히도 작년 10월에 재개관을 했다고 한다. 공사를 이유로 폐쇄했다고는 했지만 이후 방문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공사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중국이 왜 윤동주에게 집착하는지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https://m.nownews.seoul.co.kr/news/international/china/2023/11/28/20231128601003

< 대문 밖에서 찍은 윤동주 생가 동영상 >


여고 시절 윤동주는 나의 우상이었기에 죽기 전에 명동에 꼭 가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윤동주 평전'을 읽고 또 읽으며 내가 윤동주가 되어 마당에서 별을 세어 보기도 하고 우물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비록 대문 밖에서였지만 윤동주가 거닐던 모습을 상상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래도 소원성취는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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