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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May 22. 2024

기생관광을 아시나요?

나라가 기생관광으로 외화를 벌었다?

기생관광은 국가산업?

기생관광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이다. 1970년대 박정희 권시절 우리나라 관광객의 85%가 일본인 남성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한국 기생 파티 관광단 모집'이라고 대놓고 홍보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 기생관광객이 늘어나자 박정희 정권은 기생관광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아 국가사업으로 취급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민*식은 "매매춘은 외화를 벌어다 주는 애국 행위"라는 말을 했다고 이효재의 '한국의 여성운동'이라는 책에서 밝혔다. 또 당시 어떤 의원은 "밑천을 들이지 않고 외화를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도 말했다.


기생관광 반대는 반정부 행위?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 물론 일본 여성단체들도 기생관광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이런 시위를 반정부 행위로 간주하고 시민단체 대표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연행된 대표들은 반대시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풀려날 수 있었지만 쓰지 않고 저항했다. 당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경제 발전의 도구로 성매매 관광을 하나의 산업으로 받아들였다. 인권조차 무시한 채 돈을 버는 수단 그것도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인간의 성을 상품화했다. 한국 여성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당했고 한국은 돈만 있으면 성을 쉽게 살 수 있는 하찮은 나라라고 비웃음을 당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정부?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으면서 일본은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다.  대만으로 성매매 관광을 가던 일본인들이 대만에 가기가 어려워지자 박정희 정권은 일본인들을 한국으로 오게 하려고 기생관광을 키웠다. 심지어 기생 파티를 할 수 있는 요정을 지정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성매매를 뿌리 뽑겠다며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며 건전한 사회 건립을 주장했다. 겉으로는 건전하게 살 것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기생 관광을 국가 산업으로 삼았던 것이다. 1978년에는 일본인 관광객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이 700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정희 정권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피해 국가에서 가해 국가로?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인들이 반대로 다른 나라로 기생관광을 떠나는 일이 증가했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이나 동남아 심지어 동유럽 지역으로 기생관광을 간다고 한다. 제일 많이 가는 나라는 중국인데 칭다오에만 한국인 전용업소가 100여 개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다.  상류층 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기생관광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피해 국가로서 일본을 비난하던 시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기록된다.


*지난 5월 17일 <리포액트> 윤미향 국회의원 인터뷰에서 윤미향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화여대 대학원 시절 '기생관광 반대 집회'에 참여하면서라고 말했다. 기생관광은 정부가 국민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폭력과도 같은 일이라는 것을 조금 더 알리고자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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