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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Sep 20. 2024

라벤더 꽃을 좋아했던  친구.

갑가기 날아든 부고장,


40명 정원 중 단 4명이었던 여자 동기.

나는 대전 모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이상하게 그 해만 정원 40명인 무역학과에 여자 신입생이 달랑 4명만 들어왔다. 예쁜 여자 동기와 후배들을 기대했던 같은 과 남학생들이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게 됐다. 게다가 4명 중 그리 빼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고양시에서 온 한 친구가 체구가 작고 날씬하고 멋쟁이였다.


선배의 양다리.

멋쟁이 여자 동기와 같은 과 선배가 연애를 했다. 멋쟁이 여자 동기생과 나는 같은 집에서 자취를 했다. 학교 후문에 있는 반 지하방 2개짜리에서 2년을 같이 살았다. 집에 있던 어느 날 큰일이 났다며 친구가 집에 들어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현장 습격.

선배가 어떤 여자랑 비디오방에 들어가는 걸 봤다며 같이 가줄 수 있냐는 거였다. 나는 친구와 당장 그 비디오방을 찾아갔다. 친구는 너무 떨린다며 나를 앞장 세웠다. 나는 용감하게 커튼이 쳐진 칸막이 방의 커튼을 열어 제쳤다. 불길한 예감은 왜 잘 맞는 걸까? 우리는 함께 다정히 있는 두 남녀를 발견했다. 역시나 남자는 그 선배였고 여자는 달랑 4명인 여자 동기 중 다른 1명이었다. 당사자인 멋쟁이 친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고 화가 난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나야? 선배야?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여자 동기 4명은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선배가 양다리를 걸친 그 친구는 정말 순진하고 착한 친구였다. 나는 그 선배가 미웠다. 양다리를 걸치고 싶으면 다른 학과 여학생한테 걸치던지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나는 그 친구에게 선배와 헤어지지 않으면 절교하겠다며 선배를 선택하던지 나를 선택하던지 결정하라는 통보를 했다.


선배를 선택한 친구.

친구는 매일 울며 대답을 못 했고 배신당한 친구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결국 친구는 나 대신 선배를 선택했다. 이 사건 후 우리 4명은 양다리를 걸친 그 선배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함께 만나 본 적이 없다. 따로따로 모임을 하고 동기 모임에도 다 모이지 않았다.


멋쟁이 친구의 죽음

그렇게 우리 넷은 점점 멀어졌고 나와 멋쟁이 친구는 계속 연락도 하고 만나며 지냈다. 그런데 내가 3년 전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하면서 바빠지는 바람에 친구에게 연락도 자주 못 하고 만나지도 못 했다. 나중에 친구 사촌 동생에게 들은 얘기지만 친구는 나와 연락하고 우리 집에 놀러도 오고 할 때 이미 유방암 판정을 받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치료가 잘 돼서 큰 문제가 없었고 나 또한 그 친구가 머리가 빠지거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친구는 계속 아팠던 거다.


갑자기 날아든 부고장.

단골 다방에서 인터뷰 질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문자와 카톡을 확인하는 도중 '부고장'이라는 문자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건 뭐지?'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는 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그 친구, 멋쟁이 친구가 죽었다는 부고장이었다. 내가 바빠서 연락을 못하는 동안 친구는 병세가 악화됐고 유일한 친구였던 나에게 조차 자신의 처지를 알리지 않은 채 죽었다. 친구의 사촌동생이 친구 전화기를 뒤져 제일 자주 연락했던 나에게 부고장을 보냈던 거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연락되는 동기, 선후배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선배와 친구가 함께 장례식장에 왔다.

학창 시절 멋쟁이 친구에게 상처를  선배와 다른 친구는 결혼을 했고 아이 셋을 낳고 잘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멋쟁이 친구의 죽음을 알렸고 꼭 장례식장에 오라고 얘기했다. 나는 두 사람이 이제라도 멋쟁이 친구에게 상처 준 것에 대해 사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둘은 장례식장에 왔고 둘 다 눈물을 흘렸다. 그래 됐다. 저 둘도 친구에게 눈물로 사죄를 했겠지?


평생 싱글로 살다 간 친구.

멋쟁이 친구는 선배와 친구의 배신 이후  죽기 전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꼭 그 일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영향을 준 것은 맞을 거다. 친구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연세가 많고 편찮으셔서 가장으로 살았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사고를 치다 주민등록 말소가 돼 생사여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친구는 아주 낡은 엑센트 중고차를 타고 다녔다. 언젠가 친구를 만났는데 소형차를 새 차로 뽑게 됐다며 기름값도 적게 들고 주차비도 저렴하다며 신나 했다. 그런데 그 차는 정작 얼마 타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거다.


친구의 꿈.

멋쟁이 친구는 똑똑하고 손재주도 좋았다. 회사를 다니다가 '압화'라는 작업에 매료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압화 작가가 됐다. 국내 대회는 물론 국제 대회에서도 대상 등 많은 수상을 했고 강의도 하러 다녔다. 산에 가서 예쁜 꽃을 따서 작품을 만들면 행복하다고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몇 년간 빠져서 하던 압화일을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했다. 명예는 많이 얻었으나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가장이었던 친구가 더 이상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었던 거다. 친구는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고 직업 상담사 자격증을 따 직업 상담사일을 시작했다. 가끔 친구는 일이 너무 힘들다며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큰 일이라 실적이 저조하면 일하는 사무실이 없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경제적 부담에 스트레스로 병이 재발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라일락을 좋아했던 친구.

친구는 라일락을 제일 좋아했다. 라일락이 필 무렵이면 나에게 전화를 해 너무 외롭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소개팅을 꽤 여러 번 시켜줬다. 그런데 인연이 없었는지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는 끝내 인연을 만나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않고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라일락이 필 무렵이나 이 문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친구가 많이 생각난다. 오늘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문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들었는데 라일락을 좋아했던 멋쟁이 친구가 문득 그리워 글을 써 본다.

"친구야, 잘 지내? 내가 무심했어. 미안해."




**친구가 생전에 선물해 준 압화로 만든 수저 받침. 



** 대문사진은 2011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멋쟁이 친구의 압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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