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명 정원 중 단 4명이었던 여자 동기.
나는 대전 모 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이상하게 그 해만 정원 40명인 무역학과에 여자 신입생이 달랑 4명만 들어왔다. 예쁜 여자 동기와 후배들을 기대했던 같은 과 남학생들이 그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게 됐다. 게다가 4명 중 그리 빼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고양시에서 온 한 친구가 체구가 작고 날씬하고 멋쟁이였다.
선배의 양다리.
멋쟁이 여자 동기와 같은 과 선배가 연애를 했다. 멋쟁이 여자 동기생과 나는 같은 집에서 자취를 했다. 학교 후문에 있는 반 지하방 2개짜리에서 2년을 같이 살았다. 집에 있던 어느 날 큰일이 났다며 친구가 집에 들어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현장 습격.
선배가 어떤 여자랑 비디오방에 들어가는 걸 봤다며 같이 가줄 수 있냐는 거였다. 나는 친구와 당장 그 비디오방을 찾아갔다. 친구는 너무 떨린다며 나를 앞장 세웠다. 나는 용감하게 커튼이 쳐진 칸막이 방의 커튼을 열어 제쳤다. 불길한 예감은 왜 잘 맞는 걸까? 우리는 함께 다정히 있는 두 남녀를 발견했다. 역시나 남자는 그 선배였고 여자는 달랑 4명인 여자 동기 중 다른 1명이었다. 당사자인 멋쟁이 친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고 화가 난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나야? 선배야?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여자 동기 4명은 가깝게 지냈다. 그리고 선배가 양다리를 걸친 그 친구는 정말 순진하고 착한 친구였다. 나는 그 선배가 미웠다. 양다리를 걸치고 싶으면 다른 학과 여학생한테 걸치던지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나는 그 친구에게 선배와 헤어지지 않으면 절교하겠다며 선배를 선택하던지 나를 선택하던지 결정하라는 통보를 했다.
선배를 선택한 친구.
친구는 매일 울며 대답을 못 했고 배신당한 친구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결국 친구는 나 대신 선배를 선택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4명은 양다리를 걸친 그 선배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함께 만나 본 적이 없다. 따로따로 모임을 하고 동기 모임에도 다 모이지 않았다.
멋쟁이 친구의 죽음
그렇게 우리 넷은 점점 멀어졌고 나와 멋쟁이 친구는 계속 연락도 하고 만나며 지냈다. 그런데 내가 3년 전 시민기자 활동을 시작하면서 바빠지는 바람에 친구에게 연락도 자주 못 하고 만나지도 못 했다. 나중에 친구 사촌 동생에게 들은 얘기지만 친구는 나와 연락하고 우리 집에 놀러도 오고 할 때 이미 유방암 판정을 받았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치료가 잘 돼서 큰 문제가 없었고 나 또한 그 친구가 머리가 빠지거나 안색이 안 좋은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친구는 계속 아팠던 거다.
갑자기 날아든 부고장.
단골 다방에서 인터뷰 질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문자와 카톡을 확인하는 도중 '부고장'이라는 문자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건 뭐지?'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는 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그 친구, 멋쟁이 친구가 죽었다는 부고장이었다. 내가 바빠서 연락을 못하는 동안 친구는 병세가 악화됐고 유일한 친구였던 나에게 조차 자신의 처지를 알리지 않은 채 죽었다. 친구의 사촌동생이 친구 전화기를 뒤져 제일 자주 연락했던 나에게 부고장을 보냈던 거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연락되는 동기, 선후배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선배와 친구가 함께 장례식장에 왔다.
학창 시절 멋쟁이 친구에게 상처를 준 선배와 다른 친구는 결혼을 했고 아이 셋을 낳고 잘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멋쟁이 친구의 죽음을 알렸고 꼭 장례식장에 오라고 얘기했다. 나는 두 사람이 이제라도 멋쟁이 친구에게 상처 준 것에 대해 사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락을 한 것이다. 둘은 장례식장에 왔고 둘 다 눈물을 흘렸다. 그래 됐다. 저 둘도 친구에게 눈물로 사죄를 했겠지?
평생 싱글로 살다 간 친구.
멋쟁이 친구는 선배와 친구의 배신 이후 죽기 전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꼭 그 일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영향을 준 것은 맞을 거다. 친구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연세가 많고 편찮으셔서 가장으로 살았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어릴 때부터 사고를 치다 주민등록 말소가 돼 생사여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친구는 아주 낡은 엑센트 중고차를 타고 다녔다. 언젠가 친구를 만났는데 소형차를 새 차로 뽑게 됐다며 기름값도 적게 들고 주차비도 저렴하다며 신나 했다. 그런데 그 차는 정작 얼마 타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거다.
친구의 꿈.
멋쟁이 친구는 똑똑하고 손재주도 좋았다. 회사를 다니다가 '압화'라는 작업에 매료되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압화 작가가 됐다. 국내 대회는 물론 국제 대회에서도 대상 등 많은 수상을 했고 강의도 하러 다녔다. 산에 가서 예쁜 꽃을 따서 작품을 만들면 행복하다고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몇 년간 빠져서 하던 압화일을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했다. 명예는 많이 얻었으나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가장이었던 친구가 더 이상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었던 거다. 친구는 좋아하던 일을 그만두고 직업 상담사 자격증을 따 직업 상담사일을 시작했다. 가끔 친구는 일이 너무 힘들다며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큰 일이라 실적이 저조하면 일하는 사무실이 없어진다고 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경제적 부담에 스트레스로 병이 재발된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라일락을 좋아했던 친구.
친구는 라일락을 제일 좋아했다. 라일락이 필 무렵이면 나에게 전화를 해 너무 외롭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소개팅을 꽤 여러 번 시켜줬다. 그런데 인연이 없었는지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는 끝내 인연을 만나지 못했고 결혼도 하지 않고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라일락이 필 무렵이나 이 문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친구가 많이 생각난다. 오늘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문세 노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들었는데 라일락을 좋아했던 멋쟁이 친구가 문득 그리워 글을 써 본다.
"친구야, 잘 지내? 내가 무심했어. 미안해."
**친구가 생전에 선물해 준 압화로 만든 수저 받침.
** 대문사진은 2011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멋쟁이 친구의 압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