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가 주저될 때
2018년 3월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치면 대략 7년이 됐다. 그 동안 며칠 간격으로 그림이 미친듯이 재미나거나 잘 그려지다가도 다시 안 그려지고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하루 걸러 하루일 때도 많았다.
그림이 안 그려질 때는 두려워할 때인 것 같다. 뭔가 대단한 걸 그려서 분위기를 반전해보고자 하면 할 수록 뭘 그려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얀 종이가, 하얀 캔버스가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그 상황을 타파하는 방법을 알 것 같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알게 된지 좀 됐는데 나머지 한 방법은 최근에 터득했다. 그 방법이란 이런 거다.
1. '망해도 된다'라기 보다는 '망하는 건 없다'라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대로 최소한의 통제를 거쳐 행동한다. 어쩌면 '연습이다', '이건 그냥 오늘 할당량이다'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그릴 때 더 좋은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구성, 구상, 색칠을 이어간다. 심지어는 약간 더럽혀진 종이에 그린 그림이 괜히 마음에 들기도 한다.
2. 그림을 그리기 전에 '내가 그림쟁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멋진 그림쟁이가 된 상상을 하고 그 느낌을 느끼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건 최근에 알게 된 방법이라 아직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다.
무언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스스로가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 부족했다거나 자신감이 없을 때 드는 생각인 것 같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무언갈 준비했다면, 그것을 보여줘야하는 때에 그냥 후회 없이 하자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기에 끝이 다가오면 오히려 후련한 기분을 느낀다.
반면 준비가 부족했을 때는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내가 원하는 수준과 내 실제 수준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하는 것'이라고 느끼면 그 부분에서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나오는 것 같다.
물론 온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머릿속에서 봤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그림이 그려져 실망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내 실력이 겨우 이 정도라는 걸 알게 되는 때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결국' 좋은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믿고 그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가다보면 정말 처음과는 다르게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되는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림을 계속 그리다보니까 이런 과정이 생각보다 자주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림 그리는 것이 주저된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림은 표현이고, 그 속에는 자신이 담긴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자신을 담아 세상에 내놓을 때, 그 속에 주저하고 불안정한 마음이 담긴다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을 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고 무언갈 표현하는 게 꼭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 있다. 맞는 말이다. 다만, 내 생각에는, 그런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완료를 결정짓기 전까지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그래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다. 그냥 내가 재밌는 그림을, 내가 좋아할 그림을 그리는 것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그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저함을 없애야 한다. 그냥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다면 믿고 가는 거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만,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그 사이의 줄타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뭘 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하는 것들에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도 많다. 대부분은 후자에 속한다. 내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꽤 높은 확률로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냥 계속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걸 잘 하려고 애쓰는 마음은 벽에 부딪히는 고통을 가져오는 것 같다. 그냥 나는 내 나름대로의 방향에서 매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유효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 자신감이라는 건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고, 무조건 잘 되기만 한다는 믿음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냥 '나는 나라서 됐다. 이미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살아있고, 또 할 거고, 그러다보면 안 될 때도 있고 어렵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결국엔' 해낼 거다' 라는 마음이 자신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 살아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몸과 마음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