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성과 창의성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대답을 자주 했었다. 이유가 있기는 한데 그걸 말로 설명하려니 구구절절 할 것 같고, 이게 상당한 논리와 합리를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귀찮을 때 쓰기 좋은 단어였다.
7년 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즉흥적으로 선을 긋고, 색을 칠하고, 화면에 들어갈 대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모여서 오히려 내가 의도했더라면 그리지 못했을 것 같은 그림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런 그림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나의 밑바닥이 드러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즉흥성에 의해 그려진 그림들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운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했고, 오직 '내가 의도해서 그린 그림'만이 진정한 나의 그림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수 없는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역으로 내 즉흥성이 표현해낸 그림들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내가 내 그림의 첫 번째 관람객이 된 것이다.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림은 아무리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저 운이고 껍데기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선을 왜 이렇게 그었는지, 왜 이 색을 썼는지, 이 돼지머리는 뭐고, 이 줄은 뭐며, 도대체 사람의 머리는 무얼 뜻하는가는 "그냥"이라는 말로 밖에 답할 수 없었다. 그냥 거기에 그리는 게 가장 적절했으며, 그 색을 쓰는 게 가장 적절했다. 그리고 그냥 그 모양이 들어가야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계속 그림을 그렸다. 의도를 가지고 그린 그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냥"과 '적당' 혹은 '적절'하다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들이 내 그림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비단 추상화뿐만이 아니라 구상화를 그릴 때도, 왜 위스키 옆에 체스가 있는지, 왜 자유의 여신상 받침 위에 눈 덮인 나무가 있는지, 그 나무는 왜 지구 밖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첫 번째 관람자로서, 그린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며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관람자로서 해석해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릭 루빈'이라는 미국 음악 프로듀서의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태까지의 모든 '운'과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린 그림들', '즉흥성'이 창의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창조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창조적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논리적인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인간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분야는 가능성이 무궁무진 하다. 그리고 사실, 논리적인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 왜 굳이 그림을 그리거나 소리를 만들어내겠는가. 그것들은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그리고, 그렇게 소리를 내고 싶은 것뿐이고, 운이 좋게도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면 그것을 직업 삼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인간의 좌뇌는 논리적인 사고를 주로 담당하고, 우뇌는 창의적인 사고를 주로 담당한다고 한다. 좌뇌와 우뇌의 역할에 관해서도 여전히 밝혀야 할 것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무의식, 직관, 직감 등으로 부르는 영역이 우뇌의 기능에 속해있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인간은 인간이 똑똑한 줄 안다. 똑똑하지 않을 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하고 싶다. 비록 이 말이 냉소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많이 알아보고 공부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록,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에 대해 생각할 수록 우리는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모자라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바보고, 하찮은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알아야 그 한계에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늘 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보고 싶기도 하고, 그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지기도 하고, 그냥 떡볶이가 먹고 싶기도 하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물론 그 수많은 그냥 뒤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의무는 없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내리는 결정을 논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할 의무가 없으며, 그저 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진심을 다해 나로서 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