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개인으로서 가지는 다양성에 관하여
인간은 날 때부터 가지는 각자만의 성질이 있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지는 보편적인 특성 위에 피어난 개성이라는 것은 흔히들 비유하듯 지문과도 같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이러한 각자의 고유성을 토대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또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삶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는 삶이며,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흐름을 따르는 것이 그저 순응하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흐름 속에서도 최선의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독특하고도 고유한 성향을 지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니 나는 모두와 다르다. 대강 보거나 크게 보면 그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세하게 보고 정성스레 들여다 본다면 그렇다.
예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표현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표현하거나,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하거나, 여튼 그 속에는 표현하는 '사람'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되는 사람들이야 말로 높은 가치를 가지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함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만들 수도 없고, 본 적도 없을 것이며, 만든 사람의 인간미가 진하게 풍길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이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개성을 지닌 나는, 아니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산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생겨난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 각자의 특이성과 무리의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개개인에게 과제로 주어지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무리에 속한 채로 스스로가 지닌 기질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기질을 사회에 속하는 것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며, 사회에 속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 역시 각자가 지닌 특이성에서 기인하는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무리 사이의 균형을 잡는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으며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 사회의 대다수가 따르는 규칙이 있다.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제도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특수성을 존중한다.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공평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반에 속하지 않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배에서 내리라고 총칼을 들이밀지는 않는다. 이번에 자신이 과반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다음 결정 과정에서도 자신이 과반일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과반에 속하기도 하고 반대의 소수에 속하기도 한다. 이것 역시 개인이 지닌 고유한 개성 때문이다. 밥을 나눠 먹는 데에는 왼쪽에 앉은 사람과 생각이 같을 수도 있지만, 고기를 잡는 방식에는 오른쪽에 앉은 사람과 생각이 같을 수도 있다. 인간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집단의 커다란 방향성을 혼란 속에서 건져내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수에 대한 소수의 인정과 소수에 대한 다수의 존중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누구나 언제든 다수에 속할 수 있으며 동시에 소수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정과 존중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집단은 존속할 수 없다. 자신과 의견이 같은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로 빠트려 버린다면, 마지막에 남는 건 나 혼자 일 것이다. 사실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을다면 엄청난 행운이다. 아마 두 번째나 세 번째 판결쯤 가서 나도 바다에 빠질 확률이 높다. 내가 언제나 다수와 의견을 같이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개인이 개인으로서 가지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 그것은 예술에 대한 존중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