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 2025
*스포일러 포함.
<대홍수>의 가장 큰 문제는 '주제'와 '연출'의 불협화음이다. 전지구적 재난 - 타임 루프 - 인공지능 학습으로 이어지는 전례 없는 장르 도약을 거쳐 이 영화가 끝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의 소중함이다. 수만 번 몰아치는 파도를 이겨내고 아이를 구해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고귀한 것이지'라고 느끼도록 <대홍수>는 설계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정작 영화가 아이를 다루는 방식이 성의 없고 어설프다는 점이다.
극 중 6살 아이로 등장하는 '신자인'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영화를 본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의 정체성은 중요한 순간에 '어른을 방해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자인이란 인물은 오직 어머니 '구안나'의 희생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도구적으로만 존재한다. 어머니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어머니의 눈물을 뽑아내고, 어머니의 모성애를 끌어낸다. 아이를 그저 도구로 여기는 이 영화가, 결말에 이르러 아이의 소중함을 외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대홍수>는 '엄마와 아이'에 대한 영화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그냥 '엄마' 영화다. 반 쪽짜리 가족 영화고, 실패한 휴머니즘 영화다.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로 관객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안일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작위적 장면으로 가득해, 개연성에 관한 물음표가 내내 떠나지 않는다.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해 멸망하기 직전, 생존을 위해 헬기를 타러 가는 상황에 신자인은 화장실에 간다. 아파트 10층까지 물에 잠겼는데 화장실이 멀쩡한 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자인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나머지 두 인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와 통화하고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화장실에서 나와 현관문을 열면, 약속처럼 가스가 터지며 불길이 치솟는다. <대홍수>의 홍수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감독이 만든 '인공' 재해처럼 느껴진다. 공감 대신 인내심을 요구하고, 흥미로움 대신 기시감을 주는 영화다.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반부의 장르 도약은 참신했다. 재난 상황의 타임 루프를 인공지능 학습과 연결 짓고, 엄마와 이이 간의 관계를 파도에 빗대어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미 전반부에 관객의 마음이 돌아선 상황에 화려한 장르 변환을 선보이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대홍수>의 야심 찬 시도는 파도에 휩쓸려 의미를 잃었다.
2.0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