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 길들이기>, 뻔하지 않게

샘 레이미, 2026

by 굿맨

*스포일러 포함.

image.png


시작은 뻔하다. 겉모습으로 차별당하는 여성 부하 직원과 재수 없는 백인 남성 상사. 그다지 흥미로운 시작은 아니지만, 재치 있는 촬영과 편집 그리고 레이첼 맥아담스의 연기 변신은 나름 볼 만하다. 그렇게 킥킥대다 보면 어느새 인물들은 비행기에 탑승하고, 관객들은 샘 레이미의 손바닥으로 들어간다. 승무원의 "안전벨트를 착용하세요"라는 대사는 사실 관객에게 던진 말이 아니었을까.


비행기 폭발 장면은 그야말로 호쾌하다. 적당히 미쳐서는 어필하기 힘든 이 장면에서,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장르에 대한 장악력을 과시한다. 살겠다고 바짓가랑이 붙잡다가 치아가 날아가고 포크에 찔리며 속절없이 나가떨어지는 상사들의 모습은, 샘 레이미가 카타르시스를 어떻게 만드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넥타이가 걸려 곱게 죽지도 못하는 도노반(제이비어 새뮤얼)의 모습을 보라. 이 영화는 이토록 급박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무인도에 떨어진 후, 이 영화는 중요한 과제에 당면한다. 어떻게 뻔하지 않을 것인가.


코미디와 공포라는 원초적 장르의 혼합, 그리고 직장상사에게 복수하는 뻔한 소재를 가지고 '평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직장상사 길들이기>가 신선함을 위해 택한 방식은 무엇이든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다. 비행기 사고 장면도, 멧돼지 사냥 장면도, 두 인물의 액션 장면도 그렇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전개지만 그 방향대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 영화의 매 장면은 좋은 의미로 자극적이어서 확실히 포만감을 준다.


하지만 좋은 씬을 붙인다고 좋은 영화가 탄생하지는 않는 법. 결국 필요한 것은 플롯이다. 이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샘 레이미가 택한 플롯은 '뒤집기'다. 자신을 괴롭히던 상사를 무인도에서 길들인다는 이 영화는 애초에 관계의 역전에 관한 이야기다. 고립된 상황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는 두 인물은 점차 가까워진다.


그러나 우호적으로 변하는 듯했던 관계는 사실 브래들리(딜런 오브라이언)의 계략이었음이 드러나며 플롯이 다시 역전된다. 린다(레이첼 맥아담스)와 브래들리의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은 분명 신선하다. 이야기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뻔한 영화로 남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플롯을 꺾고 꺾어서 도착한 곳이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라면, 애써 반전을 거듭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야심에 비해 결과가 아쉽다. 의도적으로 뒤집어지는 영화의 방향 속에 서사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다. 극의 후반에 이르러 영화 스스로 플롯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자, 영화는 린다를 사이코패스로 변모시키고 브래들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전개가 급작스러워서 김이 새고, 감정이 제대로 쌓이지 않아서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과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나 엔딩의 저택 장면처럼, 이 영화에는 진지한 대화가 틈틈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대부분 '사실 브래들리의 거짓말이었다!'는 식으로 무마되곤 한다. 그렇다면 일전의 그 대화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분명 뛰어난 기술로 관객을 즐겁게 만들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돌아보면 아쉬운 면이 적지 않다.


3.0 / 5.0

매거진의 이전글<28일 후>, 분노의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