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2002
*스포일러 포함.
별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21세기 영화라곤 믿기지 않는 조악한 화질이 눈에 띈다. 마치 금지된 영상이라도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화질은 극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어색한 클로즈업과 점프컷은 B급의 향을 흠씬 풍기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분위기 편차가 심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 이후 쏟아져 나온 숱한 좀비 영화와 다르게, <28일 후>에는 물량 공세가 없다. 대신 속도감으로 승부를 본다.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억지스러운 전개를 삽입하지 않으며, 극이 지루해질 때쯤 되면 좀비가 튀어나와 활력을 불어 넣는다.
무엇보다 <28일 후>는 좀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이 되면 영화의 중심에서 좀비를 치워버린다. 이 영화는 애초에 '좀비'라는 고유 명사 대신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라는 덜 특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조차 좀비의 모습을 하게 만든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짐(킬리언 머피)이 건물 안의 군인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시퀀스다. 좀비 영화의 간판이 된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은 정작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짐이 군인의 눈을 찔러 살해하는 장면에서 흐른다. 항상 공포에 떨기 바빴던 짐이지만, 군인들의 소행을 알게 된 후 옷을 벗고 분노하기 시작한 그는 감염자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3.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