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종이 카탈로그는 어디로 갔을까?

비용을 넘어, 시대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형태’의 소멸에 대하여

by 마케터 H

어릴 적, 새해가 되면 거실 탁자 위에는 으레 두툼한 책자 몇 권이 놓여있었습니다. 백화점의 선물 카탈로그, 가구 회사의 신제품 카탈로그. 매끄러운 코팅지의 질감과 특유의 잉크 냄새,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움이었죠. 무엇을 사지 않아도,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던 시절의 기억입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집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탁자 위에서 그 묵직한 존재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많던 종이 카탈로그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물론 그 이유를 효율성의 관점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 권의 카탈로그가 우리 손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해보면, 그 소멸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수많은 나무가 베어져 종이가 되고, 디자인 시안이 오가고, 인쇄기의 굉음이 멈추면 비로소 하나의 ‘물건’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물건은 다시 전국 각지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죠.


그 과정에서 정보가 바뀌기라도 하면, 애써 만든 수천수만 권의 책자는 한순간에 '지난 정보'가 되어 창고 한편에서 잊혀 갔습니다. 우리는 그저 반짝이는 결과물만을 보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수많은 비용과 노고,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낭비가 숨어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현상을 단순히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 논리만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카탈로그의 소멸은 정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우리는 잘 정돈된 정보를 ‘기다려서’ 받아보는 데 익숙했습니다. 카탈로그는 바로 그 기다림의 미학을 품은 매체였죠.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검색창을 엽니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흐르고, 수정되고, 다른 정보와 끝없이 연결(hyperlink)됩니다. 어제의 정보는 오늘의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으며,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적인 정보보다는 즉각적으로 소통하고 반응하는 동적인 경험을 원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변할 수 없는 종이의 물성은 어쩌면 외로운 섬처럼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이제 카탈로그는 더 이상 종이책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손안의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영상을 보여주고 궁금한 점을 즉시 물어볼 수 있는 ‘대화의 창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종이의 낭비가 줄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이 희미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겁니다.

하나의 사물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기술이 다른 기술로 대체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방식이 저물고, 새로운 소통의 문법이 자리 잡았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습니다. 묵직한 종이 카탈로그의 자리를 가벼운 URL 링크가 대신하는 지금, 어쩌면 우리는 정보가 ‘소유’하는 대상에서 ‘경험’하는 흐름으로 바뀌는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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