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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17. 2024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업글할매 책방 #31

고재욱 작가님은 한창나이였던 마흔 살에 삶의 재난에 부딪치셨단다. ​마포대교 위에서 두어 시간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이 영등포에 있는 한 노숙인 쉼터였었다. ​


그곳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고 그 누구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바로 그곳에서 ​그 수많은 죽음들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으셨단다.

그때 작가님은 오히려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찾기 시작하셨단다. ​그리고서는 양평 마을 한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양로원을 발견하고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봉사를 시작하셨단다. ​치매 환자를 가까이서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셨단다.

양로원에서 일을 시작한 후 6개월 뒤에 정식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셨단다. ​그 후로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치매 환자들을 돌보아 오셨다.

지금 현재는 강원도 원주의 한 요양원에서 봉사를 하시면서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기록하고 계신다.


《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책 제목이 너무도 가슴 뭉클할 정도로 예쁘다. ​제목만큼 내용 또한 너무도 아름답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이야기들을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녹여주는 책이다.

삶이라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죽음이란다.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결코 예외라고는 있을 수 없는 ​이 “죽음”이라는 것에 다른 사람들의 죽음들을 보면서 ​과연 나의 죽음은 어떠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괜히 서글퍼지고 약간 두려운 마음까지 생기지만 ​이제 칠십 하나가 된 나에 대해서 그리고 이미 팔십 대에 접어든 우리 집 양반을 생각하면 ​이제는 확실히 그전과 다르게 이런 치매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년 전이었다. ​그때는 그냥 감동적이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두 번째 읽으니까 왜 이리도 가슴이 시리고 아픈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는 그래도 60대 후반이었고 ​지금은 칠십대라는 기분 때문에 받아들이는 감정이 더 절실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밀려오는 가슴 먹먹함에 ​그냥 울고 또 울고 그러다가 잠시 책을 덮어두고 ​다시 또 울고 그러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아마도 언젠가는 나와 우리 집 양반의 ​먼 미래, 아니면 어쩌면 가까울지도 모를 우리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더더욱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이라 불리는 이 시간!

할 수 있을 때 아직 살아있을 때 맘껏 나를 사랑해 주자. ​나를 온전히 사랑한 다음에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많이 사랑해 주자.

그리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기억해 주자.

삶의 마지막이 나를 찾아올 때 기쁘게 떠날 수 있도록 ​후회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해야겠다.


책에 등장하시는 많은 환자분들의 눈물 어린 사연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봐야만 온전히 그 감정이 전달될 것 같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는 가장 정갈한 물 한 그릇 떠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만 하셨던 한 할머니께서는 ​치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구를 위해서 비는지도 모른 채 ​병원 가까이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부처님께 비는 108배를 하고 계신다.

이 모습을 과연 자식들은 보고 있는지…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온다.

어떤 할아버지께서는 혼자서 충분히 걸으실 수 있는데도 ​스스로 못 걷는 사람이 되어서 요양원에 들어오셨단다. ​행여 자식한테 짐이 될까 봐 그렇게 해서라도 미리 들어오신 거란다. 할 말이 없다.

그 옛날 도깨비시장에서 두부를 팔아서 아이들을 공부시키셨다는 할머니께서는 ​치매에 걸린 지금도  끔찍하게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 요양원에서 두부를 만드신다는 이야기에 ​눈물이 핑 돈다.

자식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 ​변한 것은 오직 세상뿐일까…


아직도 많은 요양보호사님들이 치매 환자들한테 할퀴기도 하고 물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매까지 맞으신다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언제까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요양보호사님들은 자비로 치료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데 ​그저 답답하고 한심한 생각이 든다.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요양보호사님들의 인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치매환자들을 지역사회에서 보듬으면서 일본 요양원에서는

치매 환자들의 재활을 도우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목적이란다.

우리는 한 번 들어온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단다. 환자 스스로도 죽으러 가는 곳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환자분들이 요양원에 들어서는 순간 삶의 의지를 스스로 놓아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운 일도 많이 생긴단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미국의 요양원만 하더라도 환자 수가 100명이면 법적으로 그 환자를 돌볼 직원은 200명이 넘어야 한단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환자 100명당 직원 40명이란다.

이러니 가끔씩 들려오는 그 끔찍한 요양원의 상태가 알 것 같다.

미국에서 오랜 이민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우리는 ​요양원에서 노인이 맞았다거나 ​침대에 하루 종일 묶여서 지내게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 것은 들은 적이 없다. 그랬다가는 무시무시한 법이 가만 놔두지를 않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우울한 이야기는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이민자의 눈에 비치는 대한민국의 법은 정말로 솜방망이 처벌인 것이 너무도 많은 것에 가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람이 우선인 세상, 약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부모님을 모시기에 가장 좋은 거리는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가 가장 좋다고 영국에서 거론됐단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가져갈 수 있는 거리 정도에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요양원 역시 자주 들릴 수 있고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금방 가져와서 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런 거리라면 좋겠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이제는 노인 대열에 낀 우리 부부한테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철칙이 하나 있다. 나중에 아무리 병들고 힘이 없어지더라도 절대로 자식 신세는 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해야겠지만 이것 또한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마음만 독하게 먹고 있다.


잠시 불쌍하다는 생각에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가 결국에는 서로가 너무 힘든 상황으로 내딛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나이이다 보니 정말로 같이 사는 것은 피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제는 실버타운이라던가 양로원 같은 곳에 자꾸만 관심이 간다.



어느 누군가의 엄마가 치매에 걸렸는데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심지어 딸조차도 못 알아보면서 ​그러면서도 딸만 보면 웃는단다.

나는 얼마 전부터 딸애한테 늘 유언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노부부 죽으면 절대 장례식은 하지 말라는 것과 ​만에 하나 치매라도 걸리면 무조건 집에 놔두지 말고 ​무섭지 않은 요양원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안 그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라고 은근히 협박도 한다.

정말로 내가 모든 기억을 다 잃고는 딸애마저도 못 알아보면서 ​거기에다가 웃어주지도 않는다면 그걸  바라보는 딸애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니 ​아예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숨어 지내고 싶은 심정이다.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이고 산다는 것도 너무 싫고 끔찍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매일 하는 기도 중의 하나가 제발 치매만큼은 피해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공부하는 모습으로 남아있게 해달라고 한다. ​공부가 치매에 좋다고 해서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공부는 계속할 것 같다.

남아있는 가족들이나 나를 돌보아 주실 누군가에게 정말 민폐 끼치고 싶지가 않다.

우리 집 양반은 그저 순하고 고집스럽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행여 어디 이상한 데 가서 몰래 맞을까 봐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 한국은 모든 것은 다 선진국이 되어가면서 ​유독 이렇게 진심으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가끔 이상한 뉴스들이 나와서 영 마음이 심란하다.

요양원은 죽음을 앞둔 치매 노인들의 삶을 연명하는 곳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보살피는 곳이라는 고재욱 작가님 말씀처럼 ​우리나라의 모든 요양원이 작가님이 계시는 곳만 같으면

마음이 놓이겠다.


정말 마음 편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인 것 같기도 하다.


겨울이면 꽃이 지고
봄이 오면 다시 꽃이 지듯
그렇게 당신도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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